[오늘의 설교] 광야를 지날 때
입력 2010-02-03 17:43
신명기 8장 1~10절
인생을 사노라면 누구에게나 통과해야 할 피치 못할 길이 있습니다. 광야입니다. 광야는 건조한 땅입니다. 불뱀과 전갈이 우글거리고 먹을 것 없고 마실 것 없는 황량한 벌판, 제로지대입니다. 광야는 어디가 길인지 아득하기만 하고, 주저함과 막연함, 때론 불안과 두려움이 수없이 교차되는 곳입니다. 그리고 차라리 눈을 지그시 감고 그대로 멈추었으면 하는 시간들을 만나게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반드시 통과해야 할 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꼭 통과해야만 하는가? 피해 가면 안 되나? 다른 길로 돌아가면 안 되는 것인가?’ 아닙니다. 광야가 없다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할 수 없습니다. 광야를 통과해 보지 않고서는 그 어떤 천국에 대한 갈급함도, 애통함도, 궁핍함도, 사모함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진정 나의 아버지로 고백하게 해주는 통로이며 천국과 통하게 하는 사다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는 더 이상 몹쓸 땅, 저주받은 땅이 아니라, 은총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몇 개월간 이스라엘에서 연수할 때 유학생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떠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척박한 광야 경험이었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다시 한번 광야 체험을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광야는 밤에는 춥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덮습니다. 아무도 없고 적막함만 있을 뿐입니다. 도와주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간간이 먼지바람만 휘날릴 뿐. 그런데 왜 광야가 매력적일까요? 그것은 고독함 속에서 인간 내면의 심연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 걸친 것 없는 비움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대장 검사하기 전 속을 비울 때, 속이 가장 편안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초대 총리 벤구리온은 ‘지혜를 얻으려면 광야로 가라’는 말을 남긴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하시고 바로 가나안 땅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왜입니까? 그 가치와 그 소중함의 대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돼지나 개에게 진주를 달아 준들 진주의 가치가 있을까요? 그 귀함의 향기를 개나 돼지는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민족을 정제하셨습니다. 가나안까지 불과 차로 7시간, 걸어야 6일 남짓한 그 거리를 40년이라는 시간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단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을 연단한 후 정금같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광야는 가장 근원, 근본적인 것을 깨닫게 하고 생각나게 하는 곳입니다. 아니 그것을 붙잡으라고 훈련시키는 곳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을,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척박한 땅에서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수밖에 없게 한 것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하나님 말씀은 영원하다는 것, 영원한 것, 가고 오는 세상에 영원히 붙잡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광야를 통해서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야를 지나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불변의 약속입니다.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줄 것이다.’ 우리가 환난 중에서 낙심치 않는 것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소망은 장차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이정우 목사 (육군종합행정학교·남성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