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경] 김은비 양은 어디에 있을까

입력 2010-02-02 19:28


‘띠리리리’ 하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로 긴급히 도움을 호소하는 팩스가 한 장 들어왔다. 같은 소식은 이메일로도 들어왔고, 다급한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도 걸려왔다.

내용인즉, 경주시의 한 보육원에 살고 있던 김은비(18)양이 실종되었으며, 며칠 후 TV에 방영될 예정이니 많이 알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은비양 실종 사건’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은비는 4년 전 미혼모 엄마가 직접 쓴 편지 한 장만 가진 채 혼자 보육원으로 왔다고 한다. 그때까지 시장통에서 엄마와 노숙 생활을 해온 은비는 호적이 없어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자기만의 잠자리에서 매일 같은 베개를 베고 잘 수 있고, 입던 옷을 깨끗하게 빨아 입을 수 있는 보육원 생활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아이였다.

사소해도 너무 사소한 일상이 행복이라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보통 아이들은 의사, 판사, 선생님, 연예인 등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터에 은비는 귀여운 동생들과 많은 친구들, 글자를 가르쳐준 선생님과 학교에서 전교 13등을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 준 보육원 원장님이 그에겐 멋진 신세계였던 것이다.

보육원이란 곳은 은비처럼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아이들이 사는 곳이다.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 자라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런 부모의 손길로부터 버려져 감당하기 힘든 충격을 경험하고, 평생을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는 곳이다. 국가와 사회가 이들을 살피고 보듬어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주변에 어려운 아이들이 숱하게 많은데도 언젠가부터 이웃들의 관심은 좀 더 폼 나 보이는 국제 구호 쪽에 쏠려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제 남을 도울 힘이 있으니 형편이 어려운 나라를 돌볼 의무가 있다. 1분 1초에 생사가 갈리는 긴급 구호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너무나 가까운 주변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을 외면하지 않는지 우려스럽다. 우리 아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백방으로 편지를 보내고 찾아가 봐도 ‘난민 지역의 어린이 돕기운동’ 등에 사업을 집중하고 있어서 더 이상 도울 여력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올 때면 심란해진다.

은비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거가 불안정해 사방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아이였다. 아직도 아동학대나 가정경제 파산, 부모의 이혼 등에 따라 그 작은 가슴으로 울며 살아가는 아이들이 우리 곁에 이렇게 많은데도 사회의 관심은 점점 밖으로만 일방적으로 쏠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내 자식, 남의 자식을 구분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행여 우리 곁의 아이들보다 피부 색깔이 다르고 먼 나라 이웃을 돕는 것이 더 멋져 보이는 지적 허영심은 없는지, 화폐가치 차이 때문에 보내는 돈에 비해 더 큰 보답으로 돌아오는 듯한 착시효과를 즐기는 사람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이혜경 한국아동복지협회 기획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