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發 모바일 혁명-④ 통신사 이기주의에 한국만 먹통] “돈 안된다” 와이파이 차단… 스마트폰 나오자 ‘화들짝’

입력 2010-02-02 18:49


지난해 6월 한 이동통신회사 관계자는 “사용 지역이 한정된 와이파이(무선랜)보다 전 지역을 커버하는 이통사 전용 모바일 인터넷이 소비자 입장에서 더 낫다”고 말했다. 수출용 휴대전화에는 들어 있는 와이파이 기능이 왜 내수용 모델에는 빠져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거의 무료로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와이파이보다 뭣 모르고 썼다간 ‘요금 폭탄’을 맞는 이통사 전용 모바일 인터넷이 좋다는 이상한 대답이다. 그런데 이 이통사는 올해 출시하는 휴대전화의 절반에 와이파이 기능을 넣기로 했다. 어찌 된 일일까?

◇쇄국에서 개방으로=국내에선 스마트폰을 제외한 일반 휴대전화 중 와이파이가 탑재된 제품이 아직까지 없다. 그러나 국내 제조사가 해외 시장에 내놓은 모델 중에는 그런 제품이 많다. 수출용과 내수용의 사양이 다른 것이다. 이는 이통사가 ‘갑(甲)’, 단말기 제조사가 ‘을(乙)’인 국내 시장 구조에 기인한다.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이통사의 입김에 따라 내수 단말기 사양이 바뀐다는 뜻이다.

이통사들은 네이트, 쇼, 이지아이 등 자사 전용 모바일 인터넷 수익을 지키기 위해 단말기에 와이파이 탑재를 막아왔다. 이통사 전용 모바일 인터넷이 비싼 데다 볼거리도 빈약하다 보니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통사들은 PC에 내려받은 콘텐츠를 휴대전화로 옮기는 사이드 로딩(Side Loading)도 막았다. 콘텐츠를 휴대전화로만 내려받도록 해 데이터 통화료를 챙기기 위해서다. 음원도 자사가 제공하는 것만 재생되도록 휴대전화에 음원 저작권보호장치(DRM)를 걸었다.

이러던 이통사들이 최근 달라졌다. ‘개방’을 외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공급량을 대폭 늘리고 그동안 스마트폰에만 적용되던 와이파이 기능을 일반 휴대전화에도 적용, 단말기 제약 없이 저렴한 모바일 인터넷을 쓸 수 있게 하기로 했다. DRM도 해제되고 사이드 로딩도 점진적으로 허용된다. 음성통화 중심의 시장을 모바일 인터넷 위주로 바꿔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찾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 말 애플 아이폰이 국내에 상륙해 몰고 온 변화다. 아이폰은 와이파이로 자유롭게 인터넷을 즐기고 앱스토어를 통해 원하는 콘텐츠를 가져다 쓸 수 있게 하는 친(親)소비자 전략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스마트폰 시장에선 후발주자=국내 단말기 제조사들도 모바일 인터넷을 외면했다. 이들은 일반 휴대전화에 집중하느라 스마트폰 시장에서 입지를 충분히 다지지 못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사상 처음으로 휴대전화 2억대 판매와 시장점유율 20%를 넘어섰다. LG전자는 2년 연속 1억대를 넘기면서 점유율 10% 벽을 깼다. 잔치를 벌여도 될 실적이다. 하지만 지금 업계엔 긴장감만이 느껴진다. 스마트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2.8%에 불과하다. LG전자는 아예 기타(0.5% 미만)로 분류됐다. 안승권 LG전자 MC사업본부장(사장)은 “스마트폰 분야에서 늦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전략적으로 준비돼 있고 자신이 생겼을 때 본격적으로 하면 된다”고 말했지만 현재 성적표는 초라하다.

지난해 상반기 적자를 냈던 세계 휴대전화 1위 노키아는 4분기에 극적으로 회복했다. 스마트폰 판매 호조가 실적 개선을 이끈 것으로 분석된다. 끝없이 추락하던 모토로라도 4분기 스마트폰 ‘안드로이드’의 성공으로 적자폭을 절반 이상 줄였다. 아이폰을 내세운 애플은 영업이익률 면에서 노키아를 크게 앞질렀다. 모두 휴대전화 시장이 스마트폰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된 데 따른 현상이다.

지난해 전체 휴대전화 시장의 16%를 차지한 스마트폰 비중은 올해 19%, 2012년엔 25%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업체들이 일반 휴대전화에서의 성과에 안주해 스마트폰에서 반전의 계기를 빨리 마련하지 않는다면 자칫 미끄러질 수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신흥시장에 저가 휴대전화를 많이 팔아 점유율이 높아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부진하면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