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안되는 초고속인터넷 현금 마케팅
입력 2010-02-02 18:34
김연우(52)씨는 초고속인터넷을 공짜로 쓰고 있다. “A회사에 가입하면서 ‘B회사에선 현금을 더 주던데 여긴 왜 적게 주느냐’고 따졌더니 그냥 공짜로 쓰라고 하더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선 목소리가 크고 자기주장이 강해야 한다”며 웃었다.
직장인 김모(32)씨도 인터넷 가입 권유 전화를 받고 기분이 나빠졌다. 그는 “A사에 가입한 지 1년 지났으니 이제 B사로 옮기면 추가 현금을 주겠다고 했다”며 “내 개인 정보를 이 회사 저 회사로 옮기는 것이 매우 불쾌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통신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의 신년간담회에서 보조금 현금마케팅 자제를 또 한 번 다짐했다. 이석채 KT 회장은 “초고속인터넷 업체를 옮길 때 현금을 주는 마케팅은 결국 소비자를 속이는 것”이라며 “기존 고객에 대한 차별이고 국가적인 자원 낭비라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초고속인터넷과 인터넷전화 등을 묶은 결합상품에 가입하면 40만원 넘는 현금을 받을 수 있다. 1년 가까이 요금을 면제해주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9월 방통위는 과도한 경품을 제공한 SK브로드밴드, LG파워콤에 시정조치 명령을 내리면서 각각 6억7000만원, 5억8000만원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시 최대 37만원의 경품을 제공하며 유통채널별, 시기별로 경품 수준을 달리하며 최대 37만원 경품을 제공한 것이 공정질서를 저해하는 것으로 판단됐다. 혼탁 정도를 따지자면 그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심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과도한 마케팅비 지출은 통신사 수익을 갉아먹는다. KT는 지난달 29일 실적발표에서 “지난해 쿡 인터넷 가입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695만명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결합상품에 장기이용 등의 할인 증가로 2009년 4분기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7.4%, 전분기보다도 3.0% 줄었다. SK브로드밴드 역시 2009년 매출이 2008년보다 1.7% 증가했지만 988억원이던 순손실이 오히려 1912억원으로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합병 이후 실적을 내야하는 LG텔레콤, 줄어드는 유선전화 매출을 다른 곳에서 채워야하는 KT, 선장이 교체된 SK브로드밴드 모두 절박한 사정을 갖고 있다”며 “별다른 제재가 없다면 과열 경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도훈 기자 kinch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