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 시행 1년-① 시장에서 보는 자본시장법] “규제만 가득… 다양한 상품 개발 당초 취지 퇴색”

입력 2010-02-02 21:46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 4일로 시행 1년을 맞는다. 정부는 한국형 투자은행(IB)을 육성하면 시장의 칸막이가 사라지면서 자본시장이 한층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 출발하면서 자율보다는 규제에 무게 중심이 쏠렸다. 그래서 당초 기대했던 효과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회에 걸쳐 금융시장에서 바라보는 자본시장법 시행 1년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점검해 본다.

자본시장 현장에서 뛰고 있는 국내 금융투자회사 임직원들은 자본시장법이 규제와 통제만 가득한 법이라고 평가했다. 증권, 자산운용, 선물, 종합금융, 신탁으로 나눠졌던 시장을 한데 합치면서 기대했던 칸막이 제거 효과는 없다고 했다.

한 증권사 전략기획실 직원은 “자본시장법 자체가 문제다. 창의성을 발휘해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라는 당초 취지와 다르게 법이 운용되고 있다. 미국 금융시장이 대학생이 놀던 곳이라면 한국은 아직 중학생 급이다. 똑같은 규제를 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꼬집었다.

본보 금융팀은 지난달 27일부터 1일까지 증권사·자산운용사 10곳의 전략기획(상품개발), 영업부서에서 일하는 임직원 20명을 전화·대면 인터뷰 방식으로 설문조사했다.

◇“칸막이 여전하다”=금융투자회사 임직원 20명 중 44%는 자본시장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구로 투자자 보호를 꼽았다. 이어 28%는 업무범위 확대, 자본시장 발전이라고 답했다. 투자자 보호로 대표되는 규제 강화가 정부가 내걸었던 법 제정 취지(자본시장 발전)보다 더 깊게 각인된 것이다.

16%가 지목한 차이니스 월(Chinese Wall·정보 방화벽으로, 이해 상충 가능성이 큰 것으로 인정되는 금융투자업종 간 정보 교류를 차단하는 장치)까지 감안하면 부정적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자본시장법은 이해 상충시 동일공간 사용 및 정보 교류를 금지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통신 규제, 자료 관리 등 비용 지출이 많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영업부 홍영재 과장은 떠오르는 문구를 “규제 완화, 그리고 규제”라고 했다.

또 법 시행 당시 정부가 예측한 칸막이 제거 효과는 없다는 대답이 압도적이었다. 55%가 ‘효과 없다’, 25%는 ‘일부만 있다’고 응답했다. 우리투자증권 전략기획실 이용성 차장은 “법으로는 모두 열려 있지만 집합투자업 추가 인가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등 시장 상황과 맞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칸막이 제거 효과가 없다 보니 새로운 상품 개발도 지지부진하다. 지난 1년 동안 새 상품을 개발했거나 하고 있다는 응답자가 10%(2명)에 불과했다.

◇“자율은 없고 규제만”=설문 대상자 중 75%는 금융당국의 규제·통제가 심해졌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조금 심해졌다는 대답은 5%였고, 심해지지 않았다는 답변은 아예 없었다. 규제가 강해진 분야로는 투자자 보호(25%), 구두 지시나 가이드라인 강화(15%), 차이니스 월(10%) 등을 꼽았다.

이 때문에 투자자 보호를 바라보는 업계 시각에도 규제라는 색깔이 덧씌워졌다. 설문 대상자들은 불완전 판매가 사라지고, 투자 목적과 투자성향에 맞춘 상품 제공이 가능해진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펀드 상품 가입에 1시간이 걸리고, 제출 서류가 많아지는 등 형식적인 부분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투자자 보호가 실제로 강화됐냐는 질문에는 80%인 16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강화됐지만 형식적이라는 대답이 15%(3명)를 차지했다.

설문 대상자들은 한국형 투자은행(IB)으로 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해 말을 아꼈다. 단, 업무 장벽이 되레 높아졌고, 공문 등 공식절차를 거치지 않은 각종 지시가 자율을 해치고 있다고 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금융기업 176곳을 대상으로 ‘자본시장법 1년 성과와 과제’를 물은 조사에서도 80.1%가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완이 필요한 제도로는 진입 규제(29.5%), 차이니스 월(22.7%), 투자자 보호(17.6%), 건전성 규제(15.3%)를 꼽았다. 대한상의 권혁부 금융세제팀장은 “법 제정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진입, 영업행위, 자금조달, 투자 등에서 지속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

장보람 오다정 대학생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