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 ‘쓴맛’ 나는 설탕전쟁

입력 2010-02-03 03:34

‘설탕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국제시장에서 원당 가격이 29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일부 국가에선 파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기후 탓에 수확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원당을 수입해 설탕을 생산하는 국내 제당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블룸버그 통신은 1일(현지시간) 뉴욕 선물거래소에서 설탕 원료인 원당 1파운드가 30.4센트에 거래됐다고 전했다. 지난해 1년 동안 가격이 2배로 치솟은 뒤 다시 최근 1개월간 12%가 상승한 것이다. 정제 설탕 가격도 지난 1년간 100% 뛰었다.

원당 가격이 높아진 것은 생산 1, 2위인 브라질과 인도에서 이상 기후가 발생해 사탕수수 수확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반면 사탕수수가 석유를 대체할 바이오 에탄올 생산에 사용되고 세계인이 설탕의 단맛에 길들여지면서 수요는 갈수록 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최근 한 달 사이 설탕 가격이 60% 급등했다. 필리핀 GMA뉴스는 2일 설탕통제위원회가 보조금을 투입, 제조업체에서 ㎏당 60페소에 설탕을 구입해 도매상인들에게 53페소에 공급하고 있지만 일부 상인들이 이를 시중에 내놓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빵값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설탕 파동은 세계무역기구(WTO)로 비화될 조짐이다. 설탕 소비량이 많은 호주 브라질 태국이 유럽연합(EU)에 반기를 든 것이다. 이들 3국은 1일 공동성명을 내고 “EU가 50만t 늘린 설탕 수출 물량은 보조금을 받아 재배한 것으로 WTO 공정무역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이를 시정하기 위해 어떤 조치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EU는 통상 매년 보조금을 받아 생산한 설탕을 최대 134만t까지 수출하도록 허용해 왔다.

국제시장에서 원당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그 여파가 국내에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설탕은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3사가 브라질, 인도 등으로부터 원당을 수입해 생산하고 있다. 설탕은 가격에서 원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80% 이상이기 때문에 국제 원당 시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제당업계 1위(점유율 48~49%)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최근 1년 사이에 국제 원당 가격이 140% 이상 올랐는데 설탕 값은 지난해 8월 8.9% 인상한 게 전부”라며 “제당업체들이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수 사장은 최근 “원당 값이 급등해 설탕 값을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설 연휴 이후에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삼양사 관계자도 “이미 지난해부터 손해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제당업체들이 설탕 가격을 인상할 경우 과자·음료·유제품 등 소비자 물가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권지혜 김지방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