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 ‘쥘 흙과 뉠 땅’ 여는 ‘탄광촌 화가’ 황재형

입력 2010-02-02 21:18


“현실 속에서는 태백보다 서울이 더 탄광같다”

강원도 태백에서 작업하는 황재형(57)의 별명은 두 가지다. 탄광촌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모습을 담아낸다고 해서 ‘탄광촌 화가’로 불리고, 오물이 흐르는 땅에서 쭈그리고 앉아 스케치한다고 해서 ‘똥물 작가’로 불리기도 한다. 다소 어둡고 칙칙한 그의 그림 역시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너무 편안한 잠자리에 드는 사람에게는 경각심을, 불편한 잠자리에 드는 사람에겐 안식을 주고 싶다”는.

작가는 붓 대신 나이프로 거칠게 터치하고 유화 물감뿐 아니라 탄가루와 흙 등을 발라 거칠면서도 사실적인 느낌을 살려낸다. 고무를 씹듯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광부의 얼굴이나 광산에서 석탄을 선별하는 선탄부(選炭婦)의 모습 등 탄광촌 사람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린 인물화가 인상적이다. 산촌 마을이나 골목길처럼 서정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풍경화도 눈에 띈다.

대학시절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그림에 몰두한 작가는 1980년대 태백 탄광촌에서 광부로 일하면서 이곳 사람들의 힘들고 지친 삶을 화면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림이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20년 가까이 그리고 또 그린 작품도 있었다. 그러다 2007년 전시에서 작품이 모두 팔려나가는 ‘대박’을 쳤다. 비로소 빛을 본 그의 개인전이 5일부터 28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고즈넉한 골목길이나 파가 자라는 조그마한 텃밭, 황금빛 노을 속에서 달리는 퇴근길 버스의 모습, 태양빛에 반사되는 양철지붕 등을 그린 그림들은 기존의 치열함을 덜고 그 대신 원숙함을 더한 느낌이다. 그림의 색조도 탄가루 등을 이용한 검은 톤 위주에서 벗어나 한결 밝아졌다. 화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생전의 어머니를 추억하는 ‘어머니 전상서’가 짠하게 다가온다.

그림의 소재와 분위기는 달라졌지만, 그가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여전히 위안과 격려다. “현실 속에서는 서울이 (태백보다) 더 탄광 같고 그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더 광부 같은 느낌이 듭니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고 위안과 격려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60여점으로 꾸며지는 전시 타이틀은 “한 줌의 쥘 흙과 한 몸을 누일 땅이면 족하다”는 의미로 오래전부터 붙여온 ‘쥘 흙과 뉠 땅’이다(02-720-102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