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거인의 어깨’

입력 2010-02-02 18:08

아이폰 충격이 채 가시기 전에 홀연히 나타난 아이패드로 인해 IT월드가 시끌벅적하다. 스티브 잡스가 예의 그 청바지에 검은 목티 차림으로 나와 아이북의 입체형 서가에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을 검색한 뒤 마음에 드는 책을 내려받아 읽는 모습은 꿈만 같았다.

모바일 시장은 확실히 애플의 잡스가 천하를 제패하는 양상이다. 그가 내놓는 ‘i’ 시리즈는 감탄의 연속이었다. MP3 플레이어 시장을 석권한 아이팟, 스마트폰의 지각을 흔든 아이폰, 태블릿 PC의 새로운 세상을 펼쳐 보이는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나올 때마다 악∼소리 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번에는 전자책 영업을 하고 있는 아마존의 충격이 컸다.

‘아이족’ 혹은 ‘애플족’의 탄생도 눈앞에 두고 있다. 아이팟의 편리함을 익힌 자가 같은 운영체계를 탑재한 아이폰을 쓰고, 아이워크로 문서를 작성해온 사람이 아이패드를 선택한다. 응용프로그램끼리 호환이 가능하고 아이튠스와 아이북스 같은 온라인 시장의 이용자도 겹칠 공산이 크다. 문화는 익숙함에 따라 승계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줄기찬 혁신에는 ‘거인의 어깨(Shoulders of Giants)’가 있다. 아무리 키 작은 난쟁이라도 거인의 어깨 위에 오르면 거인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잡스 스스로도 “아마존은 킨들이라는 훌륭한 단말기로 전자책 시장을 열었지만, 애플은 아마존의 어깨를 딛고 올라서서 그들보다 더 멀리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잡스에 앞서 거인의 어깨를 말한 사람은 물리학자 아이작 뉴튼 경이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그는 자신의 성공에 대해 “내가 좀 더 앞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을 수 있었던 덕분”이라며 겸손해했다. 후세 과학자들이 뉴튼의 성과물을 토대로 우주 비행을 실현시킨 것도 같은 어깨에 빚졌다.

과학의 역사는 이런 어깨의 징검다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무리 탁월한 천재라도 거인의 어깨 없이는 혁신이 불가능하다. 어깨를 빌리는 사람의 겸손이 있고, 자신의 어깨를 내주는 사람의 관용이 있기에 가능하다.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대중을 향해 공개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거인인 것이다.

잡스로 인해 인간의 키가 한 뼘 더 커졌다. 이제 문명의 미래를 보려면 잡스의 어깨에 올라서지 않으면 안 된다. 잡스 스스로도 이제 어깨를 내놓은 채 고독하고 치열한 탐구를 계속해야 한다. 그가 혹 인문학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오르면 새 지평이 보일지 모르겠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