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 바이블] 아이티 참사의 책임

입력 2010-02-02 17:43

지진은 신상필벌 초월한 섭리 안에 있는 것

아이티 지진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35만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까지 있어 근래에 일어난 자연재난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한다.

이런 재난은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심각한 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왜 그런 재난이 일어나야 하며 왜 구태여 아이티 사람들이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가뭄이나 홍수 같은 것에는 그래도 인간의 힘이 어느 정도 작용할 수 있지만 지진의 경우에는 사람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는, 그야말로 순수한 ‘하나님의 행위(act of God)’라 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기독교인은 아이티 지진이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가 없다.

만약 지진이 하나님과 무관하게 그저 우연한 자연현상에 불과하다면 아이티 사람들은 아무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저 운이 나빠서 참혹한 죽음과 고통을 당했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인간의 삶과 죽음이란 자연이 가지고 노는 한갓 노리개에 불과하다는 허무주의밖에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된다. 기독교는 물론 그런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재난이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라면 또 하나의 아주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어떻게 자비로우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그렇지 않아도 먹을 것이 없어서 마요네즈를 바른 진흙 떡으로 배를 채우는 세계 최대빈국에 그런 잔혹한 재앙을 또 내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독재자들의 부패로 나라 경제는 거덜나 있고 치안을 유지할 능력이 없어서 유엔 평화유지군이 파견돼야 하는 나라에 강도 7.0의 지진을 일으켜서 악한 자나 선한 자, 노인이나 어린이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죽게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과연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시며 공평하신가?

사실 이런 질문은 1755년에 일어난 포르투갈의 리스본 지진으로 6만명이 죽었을 때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가 제기했다. 악한 자는 살아남고 선한 사람은 죽는 상황, 범죄할 시간도 없었던 젖먹이까지 한꺼번에 파멸하는 것을 보고 그는 전능하고 공정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조롱했다. 이 세상에 어떤 목적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오직 우리를 모두 미치게 하는 것뿐이란 냉소적인 결론을 내렸다.

이에 대한 가장 상식적이고 피상적인 대응은 자연적 재난도 모두 죄에 대한 처벌이라는 주장이다. 이번 아이티 지진에 대해서도 미국의 방송 설교자 팻 로버트슨은 아이티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켰을 때 악마와 손을 잡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벌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그때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지도자들이 오히려 신앙이 좋은 기독교인이었음을 밝혀냈다. 2004년 인도네시아에서 쓰나미로 16만명이 희생됐을 때도 국내 어떤 목사는 피해자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해서 기독교를 웃음거리로 만든 일이 있다.

물론 그런 피상적인 설명은 성경의 가르침과도 어긋난다. 욥의 고난이 그의 죄 때문이라고 주장한 욥의 세 친구들의 해석에 하나님은 동의하지 않았고, 무너진 실로암 탑에 치여 죽은 18명이 예루살렘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더 많은 것이 아니라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신상필벌의 원칙은 성경도 가르치고 사회질서를 위해서 반드시 존중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까지도 그 원칙에 매여야 한다는 생각은 하나님을 사람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자신의 논리를 하나님의 논리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만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불쌍한 아이티 사람들이 그렇게 참혹한 고통을 받는 것은 운이 나빠서도 아니고 죄를 지어서도 아니라는 것, 그러나 거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믿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그 뜻이 무엇인지 우리의 얕은 지혜로는 알 수도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이티 사람들의 죽음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고 믿는 것이 신앙의 특성이다. 십자가도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었다.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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