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영화 새 지평을 열다… ‘의형제’

입력 2010-02-02 21:22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송강호와 2008년 ‘영화는 영화다’로 실력을 인정받으며 충무로의 기대주로 자리매김한 장훈 감독이 만났다. 최근 영화 ‘전우치’로 관객 6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파워를 입증한 조각 미남 강동원도 가세했다. 4일 개봉하는 영화 ‘의형제’에서다.

세 사람의 만남만으로도 기대를 모으는 ‘의형제’는 남북 관계를 소재로 했지만, 기존 남북 영화와는 궤를 달리한다. 주인공인 국가정보원 요원 ‘한규’(송강호)와 남파 공작원 ‘지원’(강동원)은 이념의 극단에 선 인물이지만, 영화는 이념의 무게를 벗고 사람에 집중한다.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총격전에 연루됐다 각자 조직에서 버림받은 두 남자의 만남을 통해 영화는 소통과 관계에 주목하며 새로운 남북 영화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 감독 장훈에게 듣는다

“2010년에 나오는 남북 영화를 비극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단순 코미디로 보이고 싶지도 않았지만, 기존 남북 영화의 비극적 결말을 지금 시점에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동에서 만난 장훈 감독은 “강박에서 벗어나 재미있고 편안하게 남북 문제를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영화의 결말을 ‘해피 엔딩’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미국행을 원하는 탈북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요. 남한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느니 미국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는 게 낫다는 거였죠. 불편했지만 인상적이었고, 이런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지원’ 역시 한국이 편했다면 외국행을 택하지 않았을 테니 ‘해피 엔딩’으로만 볼 순 없어요.”

‘의형제’는 116분 동안 액션과 드라마를 넘나든다. 두 남자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는 유머도 풍부하게 곁들여진다. 데뷔작 ‘영화는 영화다’로 ‘신인답지 않은’ 연출력을 인정받았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 역시 장르를 오가는 가운데서도 갈 길을 잃지 않는 고도의 집중력과 탄탄한 연출력을 보여준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을 일관되게 유지시키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액션과 드라마의 강도, 이음새, 음악 등을 조절해 영화가 방향을 잃지 않도록 신경 썼죠. 차라리 무겁게 가면 편할 텐데, ‘의형제’가 가진 밝은 분위기를 지키면서도 감상적으로 흐르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장 감독은 미술학도였으나 대학 졸업 후 김기덕 감독 밑에서 영화를 배웠다. 디자인보다 영화로 소통할 수 있다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에서였다.

“회사 다니면서 인생이나 인간에 대해 고민하기 힘들 것 같았어요. 영화 일을 하면서는 계속 인간에 대해 공부하고 세상에 대한 생각을 수정해 나갈 수 있잖아요. 감정과 생각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 강한 매력을 느꼈죠.”

송강호는 장 감독을 “똑똑하고, 정말 착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촬영 현장에서 “감독이 너무 착하면 안 돼요”라고 농담했을 정도라고. 거친 남자들의 세계를 다뤄왔지만 장 감독은 말 한 마디에서도 유순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원래도 화를 내거나 소리 지르는 성격은 아니에요. 스태프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나면 오히려 제 마음이 불편해요. 전 영화 작업 과정이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같은 마음으로 한 곳을 바라보며 일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데요.”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인물을 죽이는 일이 너무 힘들다”는 그는 재미있는 영화를 찍고 싶지만, 가장 우선하는 가치는 ‘인간이 보이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의형제’보다 밝은 영화는 찍기 힘들 것 같다지만, 그의 다음 작품 역시 사람 안에 살아있고, 영화 안에서 행복하길 기대한다.

# 배우 송강호에 듣는다

말끔한 양복을 입고 앉아있음에도 시원스레 말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국정원에서 파면당하고 흥신소를 하며 너스레를 떠는 ‘의형제’ 속 ‘한규’의 모습이 겹쳐졌다. 소탈한 말투에서는 ‘박두만’(살인의 추억)이, 진지하게 연기론을 펼칠 때는 ‘상현’(박쥐)이 보이기도 했다.

송강호(43)는 그렇게 작품 속 인물이 되기보다 그 인물을 또 다른 자신으로 창조해내는 배우였다. 그래서 그는 매번 새로운 역을 맡아도 마치 오래 전부터 그 사람이었던 냥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흡수했고 관객을 몰입시켰다.

그의 ‘귀신같은’ 연기를 두고 혹자는 ‘연기가 본능인 배우’라고도 하고, 혹자는 ‘철저한 계산이 비결’이라고도 한다. 그는 ‘생각하는 연기’가 기본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본능적으로 연기를 하지만, 먼저 전체적인 작품의 흐름을 염두에 둡니다. 그 안에서 내가 맡은 배역의 느낌과 리듬을 충분히 떠올리고 익히죠. 이걸 머리에 담은 채 연기를 하고, 나 자신이 연기에 흡수되는가를 생각합니다. 계산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생각 없이 연기를 할 순 없어요.”

이번 작업에서는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한규’의 감정 수위를 조절하는 부분이 까다로웠다고 했다. ‘지원’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되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노련한 배우에게도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아버지, 간첩 잡던 전 국정원 요원, 정 많은 큰 형님 등 여러 면모가 중첩된 ‘한규’의 감정을 고르기는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대중 영화인만큼 지루함을 줄이기 위해 대사 칠 때의 호흡에도 더욱 신경을 썼다. 대중 영화의 가장 큰 악덕은 지루함이고, 배우의 호흡이 길어지면 편집 자체가 늘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폭염 속에 진행된 촬영에 몸이 지친 탓인지 부상도 입었다. 구두를 신고 뛰다가 허벅지 근육이 찢어졌다.

“병원에서 쉬라고 했는데, 스케줄이 빡빡하니 쉴 수가 있나요. 처음엔 한 쪽 다리만 아프더니, 나중엔 양 쪽이 다 아프더라고.(웃음) ‘나이 때문에 다쳤나’하는 생각도 들고, 액션을 안 찍을 수야 없는 일이니 이젠 준비를 더 철저히 해야겠어요.”

촬영은 고됐지만 후배 강동원과의 호흡에 대해서 그는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동원이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죠. 배우로서의 사고와 자세가 깊고, 집요하고, 솔직한 친구에요. 신념에 가득 찼으나 눈에는 우수를 담은 그런 ‘지원’ 역에 강동원 말고 누가 어울렸겠어요.”

송강호가 선택한 영화는 묻히는 법이 없다. 흥행이든, 작품성이든 그의 영화는 화제가 된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뛰어났던 게 아니라 운이 좋아 훌륭한 사람들을 만난 덕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영화의 갈 길을 먼저 생각하고, 악덕은 철저히 금하며, 캐릭터 뿐 아니라 영화 자체를 자신으로 체화시키는 그가 있었기에, 그의 영화들도 날개를 달 수 있었을 터이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