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조세지출보고서 분석해보니… 투자 않고 ‘감세’만 눈독

입력 2010-02-01 22:01


금융위기 속 기업들은 투자나 구조조정 관련 세제 지원을 외면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기업 이익이 달린 감세 항목에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고, 산업구조 개선을 이끌어내려는 정부의 감세정책 의도와 달리 시장은 철저히 이기적인 행태를 보인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집계한 지난해 조세지출 내역에는 금융위기와 실물경기 침체의 명암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기업들, 투자·구조조정 감세 외면=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09년 조세지출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산업 발전과 구조조정을 위한 직접세 감면 규모는 420억원으로 전년(454억원)보다 7.5% 줄었다. 반면 국민연금기금과 한국자산관리공사, 예금보험공사 등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지원을 위한 증권거래세 감면 규모는 272억원으로 전년(60억원)보다 4.5배나 증가했다. 구조조정 기업 처리를 두고 정부가 동분서주한 것과 달리 기업들은 팔짱을 끼고 있었던 셈이다.

조세지출보고서는 그해에 거둬들인 세금 가운데 서민이나 기업 세제지원 등으로 얼마나 깎아줬는지를 기록한 보고서다.

투자나 연구·개발(R&D) 지원에 들어간 감세 규모는 전년보다 커졌지만 내용은 부실했다. 대기업 보조금으로 전락했다는 평가와 함께 폐지 논란이 일었던 임시투자세액공제는 2조원 수준을 유지한 반면 생산성 향상을 위한 시설투자세액공제액은 지난해 286억원으로 전년(322억원)보다 12.6% 감소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같은 시설투자라도 공제율이 높은 항목으로 신고하려는 기업의 행태도 담겨 있다”며 “수혜 대상 85%가 대기업인 임시투자세액공제의 경우 공제율이 최고 10%인 반면 생산성 향상 시설의 대기업 세액 공제율은 3%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불황기 감세효과’ 명암 엇갈려=금융위기의 불씨가 실물경제로 옮겨 붙으면서 시작된 경기 침체는 정부의 감세 항목에도 뚜렷한 명암을 남겼다. 정부의 독려에도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강해지면서 중소기업 대출 관련 세금 면제 혜택을 받으려는 수요는 시들해진 반면 골프장, 카지노 입장료 감면에는 열광했다.

조세특례제한법은 창업 중소기업의 융자 서류에 대해 인지세를 면제해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금융회사가 중기 대출을 내주고 인지세를 면제받은 규모는 1억원으로 전년 수준(2억원)에 비해 반토막났다.

금융위기로 인한 상처가 덜했던 부유층이 열광한 감세 혜택도 있었다. 수도권 밖 골프장 입장 시 면제 혜택을 부여한 개별소비세 감면 규모는 지난해 1339억원으로 전년(335억원)보다 4배 가까이 폭증했다.

정부가 당초 의도한 조세 정책과 효과가 엇갈리면서 감세 정비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임투세액공제처럼 기형적으로 연장되는 감세 항목이 늘어날 경우 투자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한국조세연구원 박명호 연구위원은 “세제 혜택에 대한 효과를 살펴보고 의도한 정책목표 달성에 바람직한 정책 도구가 됐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감면 혜택이 지나치게 많은 부분은 묶어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동권 김아진 기자 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