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發 모바일 혁명-③ 빛 바랜 IT강국] 정책 오판에 치명상… IT경쟁력 세계 3위서 16위로
입력 2010-02-01 18:37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4월 국가 최고기술담당(CTO)에 애니시 초프라를 임명했다. 미국 IT의 중심 실리콘밸리에선 일제히 환영 목소리를 냈다. CTO는 국가의 인터넷 기술과 정부기관 간 업무 조율 등을 맡는다. IT를 중심으로 미국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구상을 선보였던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실현하고자 새로운 자리를 만든 것이다. 이보다 약 1년 전.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IT를 총괄하던 정보통신부를 해체하고 방송위원회와 합쳐 방송통신위원회를 만들었다. IT 업계에선 주무 부처가 사라진 데 대해 우려 목소리가 나왔다.
‘IT 강국 코리아’의 위상은 IT산업 현장에선 이미 옛 이야기다. 물론 지금도 우리나라 초고속 인터넷 평균 속도는 2위를 멀찌감치 따돌린 세계 1위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인프라를 자랑하기엔 시대가 변했다. 스마트폰, 아이패드로 대표되는 새로운 모바일 세상은 유선이 아닌 무선 기반이다.
지난해 11월 영국 경영분석 업체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니트(EIU)’는 한국 IT산업 경쟁력이 16위라고 발표했다. 2007년 3위, 2008년엔 8위였다. 여섯 가지 평가 분류 가운데 ‘인적 자원’은 2위로 여전히 세계 최고며 ‘연구·개발(R&D) 환경’도 8위를 차지하며 선방했다. 하지만 ‘법 제도’ 33위, ‘IT산업 발전 지원’에선 28위에 그쳐 순위 하락의 원인이 됐다.
이처럼 한국이 우리도 모르는 새 IT 강국 지위를 박탈당한 것은 세계적 IT 흐름에 무심했던 정부의 정책적 오판이 크게 작용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당시 IT 하나로는 부족하니 기존 산업에 IT를 접목시켜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뉴IT’를 내세웠다. 모든 것이 융합되는 시대에 적절한 방향 제시였다. 하지만 실제 정책 집행 과정은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특히 IT 주무 부처인 정보통신부 해체는 시너지의 원천인 IT 분야 역량을 붕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IT 업계에서는 ‘융합’이란 대의명분 아래 IT산업이 다른 산업의 하위 산업으로 전락했다고 불평한다.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업무가 생겼을 때 어느 부처 누가 담당자인지 알아보는 데도 전화 10통은 기본”이라며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푸념했다.
특히 방통위가 IT산업에 소홀했던 점은 더 치명적인 실패다. 방통위는 설립 취지와 달리 출범 이후 줄곧 방송에 중점을 두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에도 방송법 개정, KBS와 YTN 사장 선임 등 통신정책보다는 방송 관련 이슈에 매몰되면서 산업 현장은 버려둔 채 정치 이슈 한가운데에 있었다. 최시중 위원장이 이 대통령의 측근 출신이란 점도 방통위를 정치 이슈로 몰아가는 한 요인이 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제대로 된 방통위의 대처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이다.
정통부가 하드웨어 중심, 제조업 마인드의 산업 육성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정부가 대안으로 콘텐츠산업 육성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인 것도 아니다. 일례로 지난해 5월 한국게임산업진흥원,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등 각각 나뉘었던 5개 기관을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 통합, 종합 육성 지원을 시작했다. 하지만 진흥원장엔 전직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앉혔다. 일종의 보은 낙하산 인사인 셈이다.
하지만 계속된 문제 지적으로 방향 전환은 어느 정도 괜찮다는 평가다. 청와대는 IT특별보좌관을 두며 IT 컨트롤 타워 역할을 부여했다. 방통위도 미래 인터넷, 전파·위성, 차세대 방송 등에서 미래 성장 기반을 마련할 프로젝트매니저(PM)를 선임했다. 업계에선 이를 정통부 해체 이후 사실상 R&D에서 손 뗐던 방통위가 PM으로 산업 진흥에 다시 나선 것으로 받아들인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가 IT 강국이란 허상에 빠져 2∼3년을 허비했다”며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인 육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도훈 기자 kinch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