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녀공학 중학교 성비 불균형 ②] 사립 男중·女중, 남녀공학 전환이 해결책
입력 2010-02-01 19:02
사립학교가 남녀공학 전환 꺼리는 이유
성비불균형은 주로 중학교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초등학교는 거의 모든 곳이 남녀공학이어서 대부분 평균 성비와 가깝다. 고등학교도 이런 현상이 별로 없다. 서울 일반계 남녀공학 고교 103곳 중 남녀 성비가 1.5대 1 이상인 곳은 13곳인데, 이 가운데 4곳은 과학고와 체육고다. 여학생이 더 많은 고교도 예술고 등 특수목적고가 대부분이다.
중학교의 성비 불균형은 2000년대 이후 본격화됐다. 정부는 양성평등 확대 차원에서 1999년부터 남녀공학 확대를 적극 추진했다. 그런데 남녀공학 전환이 주로 공립학교에서만 이뤄지면서 성비 불균형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울은 유 전 교육감 재직(1996년 8월∼2004년 8월) 때 남녀공학 중학교가 급격히 늘었다. 96년 남녀공학이 전체 355곳 중 54.6%인 194곳이었으나 지난해는 374곳 중 279곳(74.6%)으로 증가했다. 반면 남중은 96년 83곳에서 지난해 49곳으로 줄었다. 여중도 78곳에서 46곳으로 감소했다. 남중 49곳과 여중 46곳 가운데 국·공립은 6곳, 4곳뿐이다. 남녀공학으로 전환하지 않고 남중·여중으로 남아 있는 학교는 대부분 사립이다.
왜 사립 중학교는 교육 당국의 정책을 따르지 않았을까. 사립 오산중의 한 관계자는 “사립학교는 설립 이후의 전통과 관성이 있다”고 했다. 대다수 사립학교 재단은 건학이념을 이유로 남녀공학 전환을 꺼린다. 각 학교 동창회는 ‘정체성이 훼손된다’며 남녀공학 전환 이야기가 불거질 때마다 강하게 반대한다. 오산중 관계자는 “특히 역사가 오래된 학교일수록 현실적으로 급격히 변화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남녀공학에서 성비 불균형이 더 심각해지고 있는 이유는 교육청이 공립학교 학급 수를 우선적으로 줄여왔기 때문이다. 서울 동부교육청 중입 배정 담당 안순아씨는 “사립은 우리 마음대로 줄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는 교사 수급과 관련이 있다. 공립의 경우 학급 수를 감축하면 그에 따라 줄어든 교사를 다른 곳에 발령 내면 된다. 하지만 사립은 교사가 갈 곳이 없다. 공·사립을 가리지 않고 교원 임금을 지급하는 교육 당국 입장에서는 공립에서부터 학급 수를 줄이는 게 부담이 적다.
저출산 현상이 문제 해결 실마리 될까
해결책은 남·여 학교로 운영하고 있는 각 사립학교가 공학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계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로 본다. 사립학교가 스스로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 당국은 정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대수 서울시교육청 학교지원과장은 “각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행정적 권장을 할 수 있지만 공학 전환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문제의 실마리는 다른 곳에서 풀릴 가능성이 있다. 저출산에 따른 학생 감소 현상이다. 이에 대한 사립학교의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고, 학생 감소를 해소할 대책 중 하나로 남녀공학 전환이 제기되고 있다.
중계동 상명여중은 학생 감소 문제를 남녀공학 전환으로 풀어보려는 학교다. 상명여중은 3월부터 상명중으로 이름을 바꾸고 남학생을 받는다. “희망의 푸른 날개 청운에 펼쳐 복된 꽃이 북돋는 씩씩한 딸들”이라는 가사의 교가는 68회 졸업생을 배출하는 2월 졸업식에서 마지막으로 불러진다.
학교법인 민정학원 소속인 이 학교는 지난해 가을 남녀공학 전환 결정을 했다. 앞서 8월 북부교육청 교육장의 공문을 받았다. 성비 불균형에 관한 민원이 많으니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게 어떻겠냐는 권고였다. 상명여중에서 600여m 떨어진 불암중은 성비가 2.5대 1이다. 300여m 거리인 을지중은 1.4대 1이다(상명여중의 공학 전환으로 불암중은 성비 불균형이 해소될 전망이다. 그러나 남학생 자녀를 둔 부모는 이를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선호 학교인 불암중 배정 확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불암중은 최근 특수목적고 진학 성적이 좋다).
이병두 상명여중 교장은 “남녀공학 전환을 고려할 때 학급 수 감축 문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현재 학년별로 10학급씩인 이곳은 2013년 8학급, 2014년 7학급으로 준다. 북부교육청이 학교 측에 알려준 예상치다. 이 교장은 “지난해 초 학급 수 예측 결과를 받고 강한 위기를 느꼈다”며 “공학으로 전환해서라도 학급 수가 줄지 않도록 하는 게 간절한 희망”이라고 했다.
교육 당국도 저출산에 따른 학생 감소가 성비 불균형 문제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용수 중부교육청 장학사는 “지금은 학급 수 감축으로 남녀공학 전환을 유도해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저출산 현상이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교육 당국의 적극성이 필요하다. 교육 당국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사립학교를 설득해 남녀공학으로 전환시켜야 성비 불균형이 해소될 수 있다. 일부 사립학교는 화장실 교체 비용도 공학 전환의 걸림돌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교육청의 지원이 필요한 대목이다.
영걸, 현성, 상수 세 친구가 어깨를 펴고 학교를 다니려면 교육 당국과 사립학교의 태도 변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특별기획팀=김호경 권기석 우성규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