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녀공학 중학교 성비 불균형 ①] 서울 남녀공학 중학교 性比 불균형 심각하다

입력 2010-02-01 21:59


머리가 짧은 중학교 1학년생 영걸, 현성, 상수는 같은 반 친구다. 가파른 언덕을 걸어 오르는 등굣길. 세 친구 눈앞은 온통 여학생 뒷모습일 때가 많다.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훨씬 더 많은 남녀공학 학교다. 세 친구 반(4반)은 현재 남학생이 11명, 여학생이 20명(전학 1명 포함)이다. 옆 반인 3반과 5반은 남학생이 한 명도 없고, 여학생만 31명씩이다. 지난해 3월 신입생 208명 가운데 남학생은 33명뿐이었다. 남녀 비율이 무려 1대 5.3이다.

세 친구는 다수의 여학생 때문에 난처한 일을 겪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화장실 얘기가 나오자 변성기인 세 친구 목소리가 커졌다. “우리 화장실로 여자애들이 막 들어와요. 볼일은 안 보는데, 대걸레 빨거나 손 씻고 가요.” 영걸의 설명에 현성 상수가 거들었다. “일상이 돼버렸어요.” 남녀 화장실이 절반씩 있으나 성비 불균형으로 여자 화장실이 모자라서 생기는 문제다.

그렇다면 항의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들의 대답에서 분명한 ‘힘의 차이’가 보였다. “우리가 뭐라고 해도 여자들이 많아서 (우리 말을) 무시할 수 있으니까요.”(영걸)

국민일보 취재팀이 서울시교육청의 ‘2009학년도 중학교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남학생 수가 여학생의 1.5배 이상인 학교가 47곳인 것으로 나타났다. 거꾸로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1.5배 이상 많은 학교도 21곳이나 됐다. 서울 남녀공학 중학교가 모두 279곳이므로 24.4%(68곳)가 성비 불균형 현상을 겪고 있는 셈이다. 네 곳 가운데 한 곳 꼴이다. 서울의 남중생(18만8420명)과 여중생(16만7418명) 평균 성비가 1.13대 1인 것과 비교하면 이들 학교의 여초(女超)·남초(男超)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는 성비 불균형을 보이는 곳이 많지 않다. 왜 하필이면 중학교만 두드러질까. 영걸, 현성, 상수 세 친구가 털어놓은 이야기 뒤에는 일부 사립 중학교의 시대를 거스르는 고집과 당국의 무책임한 교육 행정이 있었다.

1학년 男 24명 VS 女 141명… “남학생들 기죽죠”

다시 세 친구가 말했다. 이웃 남학교와 기싸움 얘기다. 이 일도 여학생 몫이고, 남학생은 구경꾼이다. “우리 애들이 미니스커트 입으니까 옆 학교(이 학교 옆에는 남자 중·고가 있다) 애들이 ‘왜 이렇게 튀냐’고 해서 서로 싸우고 있어요”(상수) “여자애들은 같은 초등학교 나온 애들끼리 몇 십명씩 몰려다녀요.”(영걸)

물리적으로 남자가 더 힘이 셀 텐데…. 영걸이 반박했다. “보통 여자애들이 약하다고 해서 싸우면 남자만 더 많이 혼나는데요. 솔직히 일대 일로 붙여놓으면 여자애가 이길 수도 있어요.”

주변의 객관적 시각도 세 친구가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숫자적으로 적은 남학생이 위축돼 있어요. 여학생이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 남학생이 치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3학년 학년부장을 맡고 있는 신혜섭 교사의 말이다.

이 학교는 반장이 여학생이면 부반장은 남학생이 맡도록 하고 있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 남학생 배려 차원이다. 하지만 남자 반장 말을 여학생이 잘 듣는 편은 아니라고 한다.

이 학교의 여초(女超) 현상은 이곳이 여중에서 남녀공학으로 전환한 2003년 이후 계속된 일이다. 근처 주민은 사정을 잘 알고 있다. 현성의 아버지는 지난해 2월 이 학교 배정이 결정되자 교육청에 전화해 따졌다. 상수는 여학생이 공부를 더 잘한다는 말을 들어 성적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소수의 남학생이 누리는 ‘혜택’도 있다. 평온한 학교 분위기다. “솔직히 지내다보면요, 평화로워요.”(영걸) “다른 중학교 간 친구들 얘기 들으면 여기가 편해요.”(현성) 여자친구 사귈 기회도 많은 편이다. 세 친구는 같은 반 남학생 11명 가운데 상당수가 여자친구를 사귀어본 경험이 있다고 귀띔했다.

왜 여초(女超) 학교에 다니게 됐나

세 친구는 서울 신당2동 장원중학교를 다닌다. 이곳은 1968년 옥수여중으로 개교한 뒤 76년 장충여중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2003년 남녀공학으로 전환되면서 장원중이 됐다. 여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은 직접적 이유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있는 장충중의 존재 때문이다. 사립이자 남자 학교인 장충중이 인근 지역 남학생을 흡수해 공립이자 남녀공학인 장원중에 남학생이 적게 배정되는 것이다.

장원중의 성비 불균형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인터넷 학교알리미(초·중등 교육정보 공시 서비스·2009년 4월 기준) 사이트에 따르면 2008년 장원중 3학년생(2006년 입학생)은 남학생 72명, 여학생 191명으로 성비가 1대 2.7 정도였다. 이 역시 정상적 상황은 아니었지만 2009년 신입생 남녀 성비 1대 5.3과 비교하면 그나마 그때가 나았다.

저출산 영향으로 전체 학생 수가 줄자 교육 당국이 공립학교 학급 수를 감축한 것도 결과적으로 성비 불균형을 부채질했다. 장원중 2006년 입학생은 8학급이었다. 현재는 1학년 7학급, 2학년 6학급, 3학년 7학급 규모다. 장원중 학급이 감소하는 동안 담장 너머 장충중은 학급이 줄지 않았다. 학년별로 5개 학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장충중에 남학생이 우선 배정되다 보니 장원중에 입학하는 남학생은 더 줄게 된 것이다.

문민식 장원중 교장은 유인종 전 서울시 교육감에게 원초적 책임을 물었다. “남녀공학 전환은 유 전 교육감 시절 추진한 것입니다. 강력하게 사립도 참여하게 했어야죠. 그렇게 안 해서 이런 파행적 현상이 생긴 겁니다. 남녀공학의 진정한 의미가 없어요.”

이 말을 전해들은 유 전 교육감은 사립학교 탓을 했다. “남녀공학은 교육 선진화 방향입니다. 자연스럽게 시대에 맞춰 가야 하는데 (사립학교들이) 필요 이상으로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사립이 정부 지원을 100% 받으면서 자주성을 강조하는 건 말이 안 돼요.” 그는 자신이 계속 재임했으면 사립학교도 남녀공학으로 전환시켰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옆 학교 장충중도 2003년쯤 남녀공학 전환을 검토한 바 있다. 교육 당국이 남자 학교, 여자 학교의 남녀공학 전환을 폭넓게 추진하던 때였다. 하지만 동창회, 학부모, 교사 모두가 반대했다. 동창회는 학교 전통을 이유로 남학교 유지를 원했다. 교사들은 남학생만 지도해 온 게 몸에 밴 상태였다. 장충중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구성원 누구도 남녀공학 전환을 찬성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공립인 장원중은 교육청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장원중은 최근 여중으로 회귀하는 것을 고심했다가 생각을 접었다. 오경숙 교무부장은 여중으로 돌아가는 게 쉬운 문제가 아님을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새삼 느꼈다고 털어놨다. “남녀공학이 되기 전 장충여중을 졸업한 분이 학교에 전화를 하셨어요. 맥이 끊어졌다고 불만을 표시하더라고요. 근데 지금 다시 장충여중으로 바꾸면 2003년 이후 들어온 남학생은 뿌리가 아예 없어지는 것 아닙니까.”

남학생 지정석 있는 학교 식당도

장원중이 서울에서 성비 불균형이 가장 심한 곳은 아니다. 서빙고동 한강중의 1학년 남학생과 여학생 비율은 1대 5.9(24명 대 141명)에 이른다. 1·2·3학년 전체 남녀 학생 성비는 1대 4.2다. 여초 1위 학교이자 성비 불균형 전체 1위 학교다.

이곳 학생식당에는 남학생 지정석이 있다. 급식 때 남학생만 앉는 곳이다. 홍승직 교장은 남학생을 배려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남학생은 식판을 들고 여학생 사이에 끼어 앉기 힘들어합니다. 편하게 밥 먹으라고 한 거죠.”

한강중도 모든 학년에서 남녀 합반이 힘들다. 각 학년이 6개 학급씩인데 2·3학년은 3개 학급, 1학년은 2개 학급만 합반이고 나머지는 여학생반이다. 남학생과 한 번도 같은 반을 해보지 못하고 졸업하는 여학생이 많다.

홍 교장은 최근 한 여학생에게서 받은 편지를 소개했다. “학생회장 선거에서 남학생과 러닝메이트를 하는 게 본인한테 불리하다는 여학생의 글이었어요. 그 학생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줄곧 여학생반이어서 아는 남학생이 없대요.” 홍 교장은 호소를 받아들여 여학생끼리도 러닝메이트를 할 수 있게 선거제도를 바꿨다.

성비 불균형을 보이는 학교는 대부분 공립이고 주변에 사립 남중이나 여중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강중의 경우 불과 600여m 떨어진 곳에 사립 남학교인 오산중이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학부모는 타 지역으로 위장 전입하기도 한다. 여초 학교의 한 교장은 “아무래도 남학생을 둔 부모는 우리 학교로 배정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5·6학년 때 주소를 옮겨 아예 성비가 맞지 않는 학교로의 배정을 피한다는 것이다.

성비 불균형 학교로 전학 가는 것을 피하는 현상도 있다. 남학생은 여학생이 더 많은 학교에 전학가지 않으려 하고, 여학생도 남학생이 많은 학교를 꺼린다.

심각한 남초(男超) 현상… 인근 여학교가 ‘블랙홀’

거꾸로 남초가 심각한 곳도 있다. 망우본동 동원중은 남초 1위 학교다. 남학생이 549명, 여학생이 172명으로 성비가 3.2대 1이다. 동원중은 주변에 송곡·영란·혜원여중이 있어 여학생을 흡수해간다. 모두 사립학교다.

유강우 교무부장은 일부 여학생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게 고민이다. “인원이 많으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친구와 어울릴 수 있는 확률이 높은데, 여학생 수가 적다보니 한두 명이 집단에서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청파동 선린중도 남학생이 더 많아 성비가 3대 1이다. 사립인 성심·신광여중이 선린중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선린중은 한동안 남녀 합반을 하다 포기했다. 서태석 교감은 2004년부터 남학생끼리, 여학생끼리 반 편성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2000년 남녀공학으로 전환했는데 그 뒤 언제나 남학생이 더 많았습니다. 성비 불균형이 점차 심해지면서 합반을 못했어요. 짝이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홀아비반, 과부반이 됐죠. 사실 합반으로 하는 게 맞아요.”

학생들의 합반에 대한 선호는 엇갈린다. 선린중 2학년 여학생 김경윤과 1학년 남학생 윤주경은 동성끼리 있는 게 편하다. 2학년 여학생 정다운과 1학년 남학생 안형주는 합반을 해보고 싶다. 그런데 네 학생 모두 생각이 똑같은 게 있다. “차라리 남중으로 하든가 여중으로 하지 왜 이런 식으로 남녀공학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특별기획팀=김호경 권기석 우성규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