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조용래] 도요타 대량 리콜사태 바로보기
입력 2010-02-01 17:58
“잘 나갈 때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이 호사다마를 피하는 유일한 길이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다. 이제 좀 됐다 싶으면 마(魔)의 불청객이 슬그머니 끼어든다. 인생만사가 그렇고 기업이나 국가 경영도 예외가 아니다. 그만큼 좋은 일을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일본의 도요타가 딱 그 격이다. 지난해 도요타는 ‘2010년 세계 1위’가 되겠다는 목표를 한 해 앞당겨 이뤘다. 글로벌 금융경제위기로 미국의 빅3가 휘청거리자 도요타는 세계 1위에 거의 무혈 입성한 것이다.
기쁨도 잠깐. 도요타는 지난해 말부터 대규모 리콜(자율 회수·수리) 사태에 직면했다. 당장 760만대가 대상인데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도요타의 전 세계 판매량 698만대를 넘어선 규모다. 원인은 가속페달의 복원력 결함이다.
리콜은 종종 벌어지는 현상이고 제조사가 자기 제품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을 뜻하는 측면도 있기에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번 리콜 사태는 규모가 너무 크다. 무엇보다 품질 지존의 도요타에 치명적인 오점을 안겼다.
게다가 가속페달 결함에 대한 소비자의 문제제기가 3년 전에 있었으나 이를 무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요타는 더욱 궁지에 몰리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31일 도요타의 품질신화가 기로에 섰다고 비판했다.
문제의 가속페달은 미국의 부품기업이 납품했지만 도요타는 관리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미국업체의 실수를 점검하지 못한 도요타의 품질관리체계가 허술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닛케이는 본질적인 도요타의 문제점으로 지난 10년 동안의 지나친 양적 팽창 위주 경영을 꼽았다.
후지모토 다카히로(藤本隆宏) 도쿄대 교수는 도요타의 강점이 심층(深層) 경쟁력에서 나온다고 분석한 바 있다(‘능력구축경쟁’ 2003). 심층 경쟁력은 고객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생산성 품질 제품개발시간 등과 같은 공장·연구소 내부에 축적된 조직능력을 말하고, 고객의 눈에 보이는 가격 브랜드 서비스 등의 표층(表層) 경쟁력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후지모토 교수는 도요타가 심층 경쟁력에서 경쟁사를 압도했다고 봤다. 그런데 이번 대량 리콜 사태는 도요타가 그간 중시해왔던 심층 경쟁력이 아니라 가격과 브랜드만을 앞세우는 표층 경쟁력에 방점을 찍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에 위기관리능력까지 흔들렸으니.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 중소기업에 비용을 떠넘겨온 도요타의 하청관행이다. 이는 흔히 인간주의 경영으로 유명한 도요타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일본이 잃어버린 1990년대를 거치면서 도산이 속출하고 대량 해고사태가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도요타는 1999년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를 주장해 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임금동결은 불가피하지만 감원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2000년 도요타는 주요 170개 부품의 구매비용을 평균 30% 삭감하는 이른바 부품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겉으로는 인간주의 경영을 앞세우고 속으로는 하청기업을 윽박질러 결과적으로 하청기업의 인력 구조조정을 낳게 했다. 이번 대량 리콜 사태도 하청기업에 대한 도요타의 납품가 인하 압력이 결과적으로 불량품을 만들게 한 원인일 수 있다.
우리의 관심은 사실 도요타가 아니다. 2008년 세계시장 점유율 4.4%에서 지난해 5.2%로 급상승하면서 쾌조를 보이고 있는 현대·기아차 그룹이다. 올해 현대차는 점유율 5.4%를 목표로 내세웠다. 문제는 과연 현대·기아차엔 도요타와 같은 호사다마의 가능성이 없겠느냐는 점이다.
지난해 GM은 시장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연비 낮은 대형차만 고집하다 글로벌 위기의 먹잇감이 됐고, 도요타는 세계 1위를 노리다 강점이었던 품질신화를 깨뜨리는 한계를 보였다. 현대차의 심층 경쟁력은 어느 수준인지, 도요타와 거의 다를 바 없을 것으로 보이는 하청기업 옥죄기 실태는 또 어느 정도인지 걱정이 앞선다. 잘 나갈 때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게 호사마다를 피하는 유일한 길이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