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동수] 간체字 학습
입력 2010-02-01 17:52
한글 전용론에 밀려 정규 교육에서 퇴출됐던 한자가 반격에 나선 것은 6∼7년 쯤 전이다. 중국의 급부상이 배경이었다. 중국과의 교역액이 우리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해지자 기업체들은 직원들의 한자 실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004년부터 많은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시험에 한자과목을 도입했다.
시중엔 한자 교재가 쏟아졌다. 한자 학습지 회사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3∼7세용 한자 학습지만도 수십 종을 넘었고 한자 사교육은 영어 조기교육 바람을 무색케 할 정도로 번져나갔다.
한자 열풍은 영세했던 한 출판사를 돈방석에 올려놓기도 했다. 이 출판사가 만든 어린이용 만화 한자학습서가 1300만권 넘게 팔린 것이다. 한자 학습지 시장도 급팽창해 지난해 대형 한자 학습지 업체 5곳의 회원 숫자는 약 90만명, 매출액은 3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처럼 공교육이 흡수 못한 한자 수요를 사교육이 장악하자 교육과정평가원은 부랴부랴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한자교육을 넣어야 한다”는 보고서를 교육부에 냈다. 설문조사 결과 학부모 89.1%, 교사 77.3%가 초등학교 한자 교육에 찬성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더 이상 교육 현장의 한자 수요를 공교육이 외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터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대목이 있다. 현재 학생들 다수가 배우고 있는 한자는 중국 대륙에서는 안쓰는 번체자(繁體字)다. 번체자는 대만과 홍콩 등을 제외한 중국사람들에겐 이미 고어(古語)에 속한다. 중국은 사회주의 성립 이후 문맹 퇴치 차원에서 획수를 간소화한 간체자(簡體字) 2238자를 제정, 보급해 왔다. 이제 간체자는 대세가 되었다. UN도 2008년부터 UN내에서 사용하는 모든 중문을 간체자로 통일했고 중국어 학습붐에 휩싸인 서구인들도 간체자를 통해 중국문자를 배운다.
그런데 우리만 세계적 경향을 무시하고 번체자를 고집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번체자만 익히면 웬만큼 공부해도 중국 거리의 간판이나 메뉴판, 도로표지판 등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쏟아부은 노력과 시간에 비해 실용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물론 70∼75%가 한자어로 이뤄진 우리말을 깊이 공부하려는 학자 등 일부에겐 번체자를 배우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까지 실제 13억 중국인이 생활에서 사용하는 글자를 외면하고 그들의 옛 글을 익힌다는 것은 난센스다.
이왕 한자를 국가교육과정과 교과서 정책에 포함시키려면 이 점을 필히 고려해야 한다.
박동수 논설위원 d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