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임항] 욕망의 전환
입력 2010-02-01 17:52
지하철 승강장에서 사람들이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가지만 아무도 미안하다는 말이나 표정이 없다. 버스에서 좌석에 앉은 사람이 서 있는 승객의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장면을 보기도 어려워졌다. 가뜩이나 경쟁이 치열한 거대도시 서울에서 내가 행복하지 못하고,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면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생길 리 없다.
핀란드 헬싱키의 한 어린이집에 딸을 맡겨 두고 직장에 다니는 싱글맘이 TV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다. “이웃과 정부가 우리 약자들에게 버팀목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장래에 대한 불안이 없습니다.” 그녀는 우리나라 같으면 최저임금밖에 못 받을 공공건물 청소 일을 하지만 넉넉한 양육수당을 받아 무료인 보육시설을 이용하면서 딸을 즐겁게 키우고 있다고 했다. 행복의 가장 기본적 조건은 내가 부정이나 불법을 통해 남으로부터 손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사회적 자본이라고 부르는 사람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남에 대한 배려도 생기는 것이다.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준비하는 것도 아니다. 핀란드 덴마크 등에서 당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장 비근한 예로 든다고 한다. 오늘 유연근무제 덕분에 오후 2시에 퇴근하면 아들과 공원에 가서 야구를 할 것이다. 이웃 도시에 사는 친척들과 만나 바비큐 파티를 한다는 것 등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일류 대학 합격, 대기업 입사, 사업 성공, 일확천금, 누구나 부러워하는 미모와 몸매 등 꼭 치열한 경쟁을 거쳐 획득할 수 있거나 큰 행운 덕분에 가능한 목표의 성취를 행복의 전제로 삼는다.
얻기 힘든 것에 매달리니 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지금 좀 쓰면서 살아도 되는데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은행 금리로 만족할 수 없으니 투자나 투기를 해야 한다. 손님이 별로 없어도 밤늦게까지 장사를 하거나 습관적으로 초과근로를 한다. 도대체 언제쯤에나 여유를 갖고 살 수 있을까. 사회학자들은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미래에 행복하다고 느낄 확률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경제학은 사람들이 더 많이 소비할수록 더 행복해진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선진국의 경험은 소비가 증가할수록 행복하다는 인식은 오히려 약해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영국 서레이대학의 팀 잭슨 교수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5000달러 이상인 국가들에서는 소득이 늘어도 삶의 만족도가 꼭 높아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경우 1950년대 이후 실질소득이 3배 이상 상승했지만 행복하다고 말하는 인구 비율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줄었다. 영국에서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비율이 1957년 52%에서 현재 36%로 낮아졌다. 두 나라에서는 우울증 환자 비율, 이혼율, 빈부격차, 비만율 등 객관적 사회지표도 나빠졌다. 사회학자들은 이 기간 동안 신자유주의와 규제 완화를 신봉한 이들 나라에서 교회를 포함한 지역사회 활동에 대한 참여도가 낮아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즉 사회적 자본의 위축이 불행의 씨앗인 셈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의 핵심도 바로 민영화, 규제 완화로 대표되는 욕망과 경쟁의 극대화를 통한 효율적 성장이다. 그것은 세종시 수정안에 집약돼 있다. 우리 모두가 정부 결정의 영향에서 오롯이 벗어날 수는 없지만, 수정안 성사 여부와 무관하게 우리가 행복해질 방법은 있다. 미래보다는 현재, 투기보다는 나눔, 저축보다는 소비, 일보다는 여가, 대량소비 대신 자연과 가족 및 이웃과 함께하기 등을 생활 속에서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열심히 이사를 다니고, 아파트 평수를 늘리면서 후자의 희생 속에 전자를 추구해 왔다. 그러나 서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평수가 도쿄보다 더 크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도쿄 시민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개인이 세상을 바꾸기는 매우 어렵지만, 우리가 욕망의 전환을 통해 일상을 하나씩 바꿔나가면 사회도 변해갈 것이다.
임항 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