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5) 한 가닥 설중매를 찾아서
입력 2010-02-01 17:52
입춘이 코앞인데, 내 코가 석자다. 매화 암향이 그리워 연신 벌름거린다. 성급하기는 저 노인도 한가지다. 하얀 나귀를 탄 노인은 챙 넓은 모자에 귀마개를 싸매고 털가죽을 망토처럼 걸쳤다. 입성으로 보건대 날은 차다. 아지랑이는커녕 샛바람조차 먼데 시방 매화 찾으러 간단다. 우물에서 숭늉 내놓으라는 꼴이다.
노인은 당나라의 전원시인 맹호연이다. 진사시에 낙방하자 댓걸음에 낙향한 그는 세상잡사에 등을 돌렸다. 삭막함이 제 분수라고 여겨 고향집 사립문을 잠갔다. 그러고도 셀 성품이었다. 그는 읊었다. ‘마주봐도 허튼 소리 안 한다네/ 뽕과 삼나무 키우는 얘기뿐’. 그에게도 좀이 쑤시는 날이 있었다. 바로 입춘! 책력에 나오는 절기는 늘 성마르건만 입춘이 춘삼월이라도 되는 양 그는 행장을 꾸린다.
그는 장안의 동쪽 ‘파교’라는 다리를 건너 눈 덮인 산을 나귀 귀가 얼어붙도록 헤맨다. 외가지 설중매라도 뵙자는 염원이다. 옛 문인의 탐매(探梅)는 깔축없이 탐애(貪愛)다. 그 욕심 아무도 못 말린다.
그러한들 따르는 종이 무슨 죈가. 노인은 마지못한 종에게 눈총을 보낸다. 가여울 손 그는 홑적삼에 밑 짧은 바지차림이다. 깁신을 신어도 발목은 시리다. 찬 목덜미로 자꾸 손이 간다. “매화는 무슨 얼어 죽을 매화라고….” 푸념 소리 들린다. 이 아이는 모른다. 빙설 속에 핀 한 가닥 매화는 춘풍에 날리는 복사꽃 만 점과 바꿀 수 없는 것을.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학고재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