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라동철] 덕혜옹주

입력 2010-01-31 19:31

요즘 서점가에 ‘이변’ 하나가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무명에 가까운 여성 작가가 쓴 역사소설이 국내외 대형 작가들의 작품을 제치고 각종 서점의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1위로 올라섰다.

울산에서 활동하는 권비영 작가가 지난해 12월 중순 펴낸 장편 ‘덕혜옹주’가 그 책이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옹주인 덕혜옹주의 기구한 삶을 복원한 이 소설은 교보문고와 예스24 등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 11곳의 판매 결과를 종합한 한국출판인회의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지난주 종합 1위를 차지했다. 19주 연속 1위였던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제작 ‘1Q84’를 제친 것이다.

덕혜옹주는 조선왕조 26대 왕 고종이 1912년 궁녀 양귀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고명딸이다. 고종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지만 망국(亡國)의 옹주란 삶은 순탄할 수 없었다. 고종은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 일본 여성과 결혼한 아들 영친왕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옹주를 한국인과 서둘러 약혼시키려했지만 일제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19년 고종이 갑자기 승하하고, 옹주는 열세 살 때인 25년 일본으로 가는 배편에 몸을 실어야 했다. 옹주는 29년 생모가 세상을 뜨자 귀국했지만 곧바로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일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데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까지 겹치면서 덕혜옹주는 정신질환을 앓았다.

병세가 호전돼 31년 쓰시마섬 도주의 후예와 결혼, 이듬해 딸(정혜)을 낳았지만 불행은 비켜가지 않았다. 해방이 됐어도 옹주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조선왕조를 비판적으로 인식한 이승만 대통령이 옹주의 귀국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옹주는 병세가 악화돼 46년 정신병원에 감금됐고, 55년에는 남편으로부터 이혼까지 당했다. 이듬해에는 관계가 소원했던 외동딸마저 유서를 남기고 실종됐다. 덕혜옹주는 일본에 간 지 37년 만인 62년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삶이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창덕궁 낙선재에서 기거하며 실어증과 지병으로 고생하다 89년 4월 21일 7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덕혜옹주의 기구한 삶은 연극과 방송 특집극 등으로 몇 차례 소개된 적이 있지만 옹주는 우리 기억에서 잊혀진 존재였다. 올해는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다. 덕혜옹주의 비극적인 삶 속에는 국권을 빼앗긴 치욕의 역사가 던지는 교훈이 녹아들어 있다. 덕혜옹주의 한 많은 인생을 기억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라동철 차장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