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정상회담이 반갑지만 않은 이유
입력 2010-01-31 20:01
이명박 대통령이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연내 남북 정상회담 개최가 가능하다고 밝힌 데에는 지난해부터 계속된 남북 접촉에서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9년 8월 북한 특사조문단과 이 대통령 면담→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의 싱가포르 회동→두 차례 개성 접촉, 그리고 추가 접촉을 통해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남측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밝힌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과 올해 남북관계에 새 전기를 만들자는 이 대통령의 신년 연설도 있었다.
남북 정상회담의 걸림돌은 납북자 및 국군포로 송환, 대북 경제적 지원 규모 등 구체적인 의제에 대한 입장차라고 한다. “만나는 데 조건이 없어야 한다”는 이 대통령 발언은 지금도 줄다리기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양측 간 이견이 해소 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연내’라고 처음으로 시기를 명시한 것은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6·15 공동선언 10주년이자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인 올해 두 정상이 만나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구현을 위한 거보를 내딛기를 기대한다.
우려되는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이 대통령은 종전까지 정상회담이 북한 핵 포기에 도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BBC 회견에서는 “북핵 문제에 대해 충분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 “조건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 겹쳐져 북핵 문제가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다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북핵의 최대 피해자는 남측이다. 북핵 문제 진전만큼은 정상회담 조건이어야 한다.
정상회담 추진 과정을 낱낱이 공개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처럼 “연내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대통령 발언을 “연내에 안 만날 이유가 없다”고 왜곡해서는 안 된다. 뭔가 구린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 있다.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 쪽으로 연일 포를 쏘아대는 시점에 이 대통령이 ‘연내 정상회담’을 언급한 점도 개운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