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미션-아버지] 제1가나안농군학교 김평일 교장이 말하는 ‘김용기 장로’

입력 2010-01-31 18:10


평생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

박정희 앞에서도 ‘식사기도’ 꼿꼿


“제 아버님은 살아계실 때 ‘나다, 먹다, 죽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인간으로 ‘태어나’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먹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죽는’것이라는 교훈입니다.” 경기도 하남시 풍산동 제1가나안농군학교 김평일 교장이 부친 일가(一家) 김용기 장로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말씀이라며 소개했다. 김 교장은 반세기가 넘도록 이 세 마디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아버님 손에 이끌려 다섯 살부터 시작한 새벽기도는 제가 지금까지 올바른 신앙인으로서 삶을 살 수 있도록 한 매우 소중한 가르침이자 유산입니다.”

김 장로가 아들에게 가르쳐준 또 하나의 중요한 인생철학은 ‘일하기 싫은 자 먹지도 말라’는 것이다. 식사 전 기도와 함께 외쳤던 구호다. “일하기 위해 먹자!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고 소리쳐야 점심밥을 먹을 수 있었다.

가나안농군학교에 들어온 사람이면 그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 박정희 전 대통령도 이 규칙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는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사연은 이렇다. 1962년 당시 최고회의 의장이었던 박 전 대통령이 학교를 찾았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자 김 장로는 평소와 다름없이 삶은 감자와 빵을 대접했다. 박 전 대통령은 별 생각 없이 빵 한 조각을 떼어 입에 물었다. 그 순간, 김 장로는 박 전 대통령에게 정중하면서도 근엄하게 말씀했다. “각하는 삼천만 백성의 어버이시지만, 이 학교에서는 제가 어버이입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먹기 전에 식사기도부터 드려야 합니다.” 박 전 통령은 즉시 빵 조각을 내려놓고, 김 장로의 기도를 경청한 다음, 함께 구호제창까지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김 장로는 무소불위의 실력자 앞에서도 위축됨이 없었다. 하나님 아버지를 믿었기 때문에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솔선수범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당당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김 교장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이 세상에서 최고로 자랑스러웠다고 회고했다.

‘고무신 비행기를 타다’는 일화도 김 교장이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짧은 한마디는 당시 유력 일간신문의 기자가 붙여준 것이다. ‘아시아의 노벨상’이라는 막사이사이상에 선정돼 수여식 가는 길에 하얀 고무신과 흰 두루마기를 입고 비행기에 오르는 모습을 보도한 기사의 표제였다. 많은 이들이 양복을 입으실 것을 권유했지만 김 장로는 손을 내저으며 한복을 고집했다. “한복을 입어야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않겠습니까. 한국의 전통의상을 전 세계에 알려야죠.”

김 교장은 ‘진정한 아버지는 누구인가’에 대한 부친의 설명은 아주 쉽고도 명쾌했다고 했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그렇게 계속 올라가면 결국 하나님은 너같이 생겼다.” 김 교장은 아버지가 어느 대학에서 한 특강 중 한 토막이라며 소개했다. 학생들이 ‘하나님이 어떻게 생겼느냐. 누구냐’며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자 빙그레 웃으며 그 학생을 큰 거울 앞에 세우고 던진 말씀이란다.

김 교장은 요즘 부쩍 아버지 김 장로가 그립다. 57년 전 이곳에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해 흙의 개척자로서, 새마을운동의 개척자로서 ‘조국이여 안심하라’며 혼신의 힘을 다해 땀을 쏟았던 이곳을 ‘보금자리주택 정책’에 따라 머지않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 학교를 옮기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 답답하단다.

그러나 김 교장은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70여만명의 가나안농군학교 수료생들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김 장로가 평소에 강조한 말을 잊지 않는다고 했다. “내 몸에서 낳았다고 다 내 자식이 아니다. 뜻과 마음을 함께하는 사람이 곧 부모와 자식이다.” 이상과 사상, 믿음이 같아야 진정한 어버이요, 자식이라는 말씀이다.

김 교장은 가나안농군학교를 통해 아버지로부터 배운 교육 철학을 고스란히 물려주고 있다. “돈이 많다고 해서 한 나라가 강성한 것이 아니다. 정신이 강해져야 한다. 빈곤의 시대에는 근검절약을 통해 가난을 이겨내야 한다. 풍요의 시대에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도록 자극하고 독려하며 삶의 질서를 다시 세워야 한다. 이 시대 아버지들이 깨어나야 한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