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초등학생 위한 ‘성동-한양 영재스쿨’ 첫수업 가보니…꿈 키우는 아이들

입력 2010-01-29 21:28


박현정(11)양은 4년 전 TV에서 ‘호두까기인형’ 발레 공연을 본 뒤 발레리나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현정이는 “무용을 배우고 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기 힘들었다.

그런 현정이가 이제 무용을 배울 수 있게 됐다. 서울 성동구청과 한양대 지식봉사단이 이 지역 저소득층 가정의 학생들을 위해 공동으로 만든 ‘성동-한양 영재스쿨’을 통해서다.

현정이는 29일 들뜬 마음으로 서울 성동구청 청소년수련관을 찾았다. 오후 3시30분 사방이 큰 거울로 둘러싸인 발레 강의실에 한양대 무용학과 황규자 교수와 김혜신 교수가 들어서자 현정이를 비롯한 6명의 아이들은 환호성을 쳤다.

수업 직전 아이들은 예쁜 분홍색 발레복과 신발을 선물로 받았다. 딱 붙는 발레복에 몸매가 드러난 아이들은 부끄러운 듯 몸을 손으로 가렸지만 얼굴에는 웃음꽃이 폈다. 황 교수는 “몸을 가리지 말고 가슴을 쫙 펴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너무 예쁘다’라고 되뇌자”며 자신감을 북돋웠다. 아이들은 이내 팔을 내려 옆구리에 갖다댄 채 교수의 지시를 따랐다.

황 교수는 “설레는 첫 만남이었다. 선천적으로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도 보여 지속적으로 교육해 훌륭한 발레리나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학부모 반응도 좋았다. 수업을 참관한 어머니 김모(40·여)씨는 “딸이 진지하게 수업에 몰두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며 기뻐했다.

같은 시간 3층 강의실에선 영재스쿨 미술반 첫 번째 강의가 한창이었다. 한양대 응용미술교육학과 이부연 교수는 중앙에 달걀 모양이 그려진 종이를 12명의 아이들에게 건넸다. 이 교수는 “동그라미를 가지고 어떤 것이든 그려 보세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종이를 이리저리 돌려 보며 무엇을 그릴 지 고민을 거듭했다. 아이들은 이내 아빠 얼굴, 공작새, 로켓 등을 그려냈다. 이 교수는 “공작새를 창의적으로 참 잘 그렸어요”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는 “미국에서 6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한 혜택을 이 지역의 아이들에게 돌려줄 수 있게 돼 너무 행복하다”고 뿌듯해했다.

성동구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초등학생들이 영재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윤선희 교수의 아이디어와 이에 귀 기울인 성동구청 때문이다. 윤 교수는 “형편상 사교육을 받지 못하고 영재성 발굴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지식과 재능을 기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6명이 시작했지만 참여를 원하는 교수의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학생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오후 5시, 1시간30분간의 수업이 끝난 뒤 아이들의 얼굴은 함박웃음으로 가득했다. 처음 입어본 발레복을 벗기 싫은 듯 만지작거리던 현정이는 “열심히 노력하면 훌륭한 발레리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행복하다”고 활짝 웃으며 집으로 향했다.

조국현 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