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故김소운 시인의 외손녀 日가수 사와 도모에

입력 2010-01-29 18:11


“외할아버지 번역 ‘내 마음’이 대표곡이죠”

일본 가수 사와 도모에(39)씨가 11년 만에 한국에서 단독 공연을 한다. 2월 초로 잡힌 그의 공연은 올해가 한일병합 100주년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그는 1998년 일본인으로 처음 한국에서 일본어로 공연을 한 가수다. 사와씨의 혈관엔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 아버지가 일본인이고 어머니가 한국인이다. 외할아버지는 일본에서 작품 활동을 한 시인 김소운(1907∼1981)이고 외할머니는 민주화운동의 대모 김한림이다.

29일 서울 서교동에서 만난 사와씨는 구김살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공연에 앞서 31일 3·1운동 유적지가 있는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교회를 먼저 방문할 계획이라는 말에서 그의 몸에 흐르고 있는 한·일 관계사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일본인이 한국인에게 저질렀던 일 때문에라도 내가 꼭 가야 하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사와씨에게 제암리 교회는 사죄의 장소인 동시에 추억의 장소다. 외할머니와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때 자주 갔던 곳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가면 교회 분들이 ‘우리 도모에 왔구나’ 하고 반겨주셨어요. 10년 전에도 갔는데 이번에 가면 알아보는 분이 계실까 싶네요. 이번 방문은 예배가 목적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찬송도 부르고 싶어요.”

그는 외할아버지에 대해 “일본인보다 일본말을 더 아름답게 쓰는 분”이라고 기억했다. “할아버지가 일본어로 번역한 ‘내 마음’(김동명 작사, 김동진 작곡)을 98년에 제가 처음 불렀어요. 일본에서는 이 노래를 부르면 다 울어요. 말이 너무 아름다워서요. 지금은 저의 대표곡이랍니다.”

그에게 한일병합 100주년을 맞는 소회를 물었다. “한국과 일본이 앞으로 100년을 바라보고 잘 지내려면 서로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저는 부모님 덕분에 두 나라 사이에 있었던 일을 모두 배웠지만 학교 역사시간에는 그런 내용이 없어서 항상 화가 났어요. 선생님은 ‘시간이 없다’면서 그냥 넘어가더군요.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8·15도 몰라요. 역사교육이 너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는 일본을 향해서도 한마디 했지만 한국에 대해서도 당부를 잊지 않았다. “한국은 역사적인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일본의 다른 면을 볼 필요가 있어요.”

그는 한국과 일본이 분명 다르지만 하나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두 나라에서 모두 공연을 하는 그가 보기에 한국은 리듬감이 있는 노래나 아주 느린 곡을 좋아하는 반면, 일본은 미디엄템포의 노래를 좋아한다. “취향도 각 나라의 성향을 닮아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아침이슬’을 한국어로 일본에서 불렀어요. 노래에 아무런 설명도 안 했어요. 그런데 다들 눈물을 흘려요. 노래에 스며든 영혼이 아름답고 멜로디가 너무 좋다고요.”

98년 그가 처음 한국 공연을 할 때는 일본어 노래를 두 곡 불렀다. 그것도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제약도 없다. 일본어를 스스럼없이 구사하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한·일 관계가 많이 변한 거 같아요. 10년 전보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힘이 생겼고 자신감도 강해진 거 같아요. 한·일 양국 사이에 정치나 경제 교류도 많아진 거 같고요. 그동안 상업적인 문화 교류는 많았지만 앞으로는 예술적 가치가 있는 문화 교류가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국제교류기금 주최로 열리는 사와씨의 공연 ‘더 라인’은 다음달 2일 홍대 상상마당 라이브홀, 3일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 5일 부산시민회관 소극장에서 열린다(02-397-2828).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