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저녁까지 ‘막장 드라마’… 뻔한 소재로 자극적 설정, 콘텐츠 다양성 훼손 우려
입력 2010-01-29 21:36
자극적인 설정과 인위적인 전개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막장 드라마(막드)’는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현상이다. 지상파 3사의 드라마 편성표를 살펴보면 현재 대한민국 방송계는 ‘막드 천국’이라 할 만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요일을 가리지 않고 복수와 출생의 비밀 등 진부한 소재의 드라마가 반복되고 있다. 종국에는 시청자의 감수성을 피폐하게 하고 콘텐츠 다양성을 저해할 ‘막드’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복수로 얼룩진 평일 아침 드라마= 오전 7시 50분. MBC ‘분홍립스틱’부터 복수의 서사는 시작된다. 남편과 친구의 배신으로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한 유가은(박은혜)의 복수극이다. 이 여자는 두 번째 남편을 맞고 그 친구의 아들과 사랑에 빠져 삼혼을 노린다. 또한 어릴 때 잃어버린 동생을 찾는 ‘출생의 비밀’ 코드도 병행된다. 이어 8시 40분 SBS ‘망설이지마’는 복수의 수위를 높인다. 이번에도 친구의 배신으로 남자친구를 뺏긴 여자의 복수극이다. 기억상실, 간이식, 고부갈등 등 고강도 설정이 동원된다. ‘망설이지마’가 끝나고 숨을 잠깐 돌린 뒤 KBS2를 틀면 부모의 잘못으로 인해 자식이 바뀐 비극을 그린 ‘다 줄거야’(오전 9시20분)가 방송된다. 자신이 키운 딸에게 냉정한 엄마, 또 그 엄마엑 복수를 품는 딸 등 출생의 비밀은 복수로 치닫는다.
아침드라마가 계속 극한 설정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 줄거야’의 김원용 PD는 “아무래도 아침에는 시청층이 주부로 고정돼 있어서 강한 설정이 난무하는 것 같다. 또한 기존 아침 드라마에서 자극적인 내용을 쏟아내서 내성이 생긴 점도 있다”고 밝혔다.
◇평일 저녁과 주말에도 계속되는 ‘막드’=온 가족이 TV앞에 모이는 평일 저녁과 주말 저녁 시간대도 ‘막드’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평일 오후 8시 25분 KBS ‘다함께 차차차’의 주요 코드는 기억 상실과 금지된 결혼. 기억을 상실한 남편을 두고 전 가족과 현 가족의 갈등을 그린다. 양 가족의 자녀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사랑에 빠졌다가 운명 앞에 좌절한다.
주말 가족 시간대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오후 7시 55분 KBS2 ‘수상한 삼형제’는 비상식적 캐릭터와 도를 넘어선 고부갈등으로 시청자의 빈축을 사고 있다. 1시간 뒤 SBS ‘천만번 사랑해’는 더 가관이다. 형의 대리모가 동생과 결혼하고, 형은 불륜의 중심에 서있는 등 상식이나 도덕을 넘는 줄거리가 버젓이 방영되고 있다.
드라마가 비윤리적인 줄거리로 쏠릴수록 시청자의 드라마 기피증은 높아져 간다. 시청자 정연희(35·여)씨는 “TV만 틀면 복수에 출생의 비밀이니 이제 드라마를 보기가 싫어진다. 언제까지 진부한 설정들로 시청자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방송사가 시청률이 안 나올지라도 신선하고 유익한 콘텐츠를 자꾸 시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
김도영 대학생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