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춤추는 꿈틀이 밴드’… 밑바닥 삶서 꿈 찾는 ‘어른들 동화’
입력 2010-01-29 18:07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하단, 파리, 바퀴벌레에게도 무시받는 존재, 낚시줄에 걸린 미끼로나 생을 마감하면 쓸모나 있는 미물. 그게 지렁이다. 디스코 스타를 꿈꾸는 지렁이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춤추는 꿈틀이 밴드’에 따르면 말이다.
밝은 색감과 유쾌한 분위기가 주조를 이루는 애니메이션이지만 ‘꿈틀이 밴드’는 사실 밥벌이에 지쳐 꿈과 열정을 잃어버린 채 사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디스코 음악에 푹 빠져버린 지렁이 ‘배리’는 땅 속 마을에서 열리는 ‘슈퍼스타 콘테스트’ 소식을 듣고 마을 최고의 스타를 꿈꾸며 밴드를 모집한다. 뚱뚱보 베이시스트 ‘티토’, 지렁이 마을 최고의 미인이자 음치인 ‘글로리아’, 돈이 없어 기타는 사지 못하고 케이스만 들고 다니는 해비메탈 매니아 ‘지미’, 이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 ‘도나’가 밴드의 일원이다. 디스코에 대한 열정과 슈퍼스타가 되고 싶은 희망에 가득찬 이들이지만 팔다리조차 없는 하찮은 지렁이라는 이유로 콘테스트 출전 자격조차 얻을 수 없다.
어렵게 무대에 설 기회를 잡았지만 관객의 야유 앞에 무대에 서는 것조차 용기가 나지 않는 ‘꿈틀이 밴드’. 이들은 과연 꿈을 펼칠 수 있을까.
주인공들은 “똥덩어리나 먹는 지렁이”라는 편견과 차별에 시달린다. 다른 벌레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지렁이에게 돌아오는 건 “지렁이 따위와 친구가 될 줄 알아?”라는 멸시뿐이다. 지렁이 세계의 최고 출세는 ‘똥덩어리 공장’에 취직하는 일 정도다. 계속되는 주변의 무시와 열악한 환경으로 밴드 구성원들조차 자신들이 콘테스트에 나가 우승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기 힘들다.
태생적 한계로 인해 차별받는 존재,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도 무시받기 일쑤인 지렁이에 감정이입이 되는 건 지나친 현실비하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디스코는 행복한 음악이야. 땅 속에서 흙이나 먹고 살면서 우리가 언제 그런 기분 느껴본 적 있어?”라며 친구들을 다독이는 ‘배리’의 대사는 지금 우리에게 보내는 응원으로 들린다.
승진 시험과 콘테스트 출전을 놓고 고민하던 ‘티토’가 시험에서 1등을 하고서도 겨우 메뚜기 이사의 와인 저장고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되자, 회사를 박차고 나와 콘테스트 장소로 향하는 것 역시 어른을 위한 장면이다.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에서 영상 미디어를 전공한 감독 토마스 보르히 닐슨은 원래 ‘펩시’, ‘칼스버그’ 등 세계적 브랜드들의 CF를 연출하며 명성을 날리다 영화에 입문한 인물이다. 그는 비 오는 날 음악을 들으며 길을 가다가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꿈틀이 밴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영화에는 디스코의 선두주자 그룹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의 ‘부기 원더랜드’, ‘잭슨스’의 ‘블레임 잇 온 더 부기’ 등 70년대를 사로잡던 디스코 팝송 11곡이 사용됐다.
이야기의 흐름이 단순해 지루한 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흥겨운 리듬은 귀를 즐겁게 하고 고군분투하는 지렁이의 모습은 가슴을 물렁하게 만든다. 4일 개봉.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