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태형] 성공의 희생자
입력 2010-01-29 18:01
데이비드 부소. 그는 1974년 겨울 자연재해로 폐허가 된 호주의 다윈에 구호활동을 갔다가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한다. 35세에 이미 20여개의 기업체를 거느린 백만장자가 됐지만 그는 늘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했다.
지금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공은 언제나 상대적이었다. 한 단계에 도달하면 자기보다 더 성공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충분한 것은 언제나 조금 더 많은 것’이라고 갈파한 록펠러의 말은 현실이었다. 부소는 자신이 결코 ‘성공의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 노력했다.
성공의 길에서 문득 의미를 생각한 부소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돈을 얼마나 벌어야 충분히 번 것일까?’ ‘어느 지점에서 개인의 이익을 그만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나의 재능을 사용할 것인가?’ 결국 그가 깨달은 것은 인간은 태어나서 이 세상에 무언가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흔적은 세속적 성공으로서는 남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공 자체보다 의미를 추구하기로 작정했다. 봉사하러 간 다윈에서 극빈자들을 위해 사는 것이 자신의 소명임을 깨달았다.
이후 그는 ‘사회적 기업가’로서 제2의 삶을 살았다. 그가 시작한 빈민을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은 이제 세계로 뻗어나갔다. 전 세계 27개국에서 수백만명의 빈민들이 부소가 시작한 소액대출운동으로 새로운 삶의 기회를 맞이했다. 그는 2004년부터는 북한 주민들까지를 대상으로 무담보 소액대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백만장자 부소는 이제 희망의 전도사가 되었다. 그가 남긴 흔적은 전 세계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26일 새벽 자살한 삼성전자 이모 부사장은 입사 때부터 S(Super)급 인재였다고 한다. 사내에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연봉은 10억. 보유주식의 가치는 60억에 달한다. 그럼에도 자살을 선택한 데는 말 못할 이유가 많았으리라. 언론은 ‘회사 때문에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를 통해 자살 동기를 유추하고 있다.
때마침 출간된 데이비드 부소의 이야기 ‘네가 선택한 길에서 뒤돌아보지 마라’(포이에마)를 막 읽던 차에 이 부사장의 자살 뉴스를 접했다. 이 부사장이야말로 부소가 경계한 ‘성공의 희생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은 성공의 희생자들이 있다.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