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순간이 눈부신 기회… ‘풀밭 위의 식사’

입력 2010-01-29 21:34


풀밭 위의 식사/전경린/문학동네

전경린(48)은 사랑의 뜨거운 외피와 차디찬 심연을 가장 날카로운 언어로 표현할 줄 아는 작가다. 그의 사랑은 언제나 날 것이기에 독하디 독했고, 독한 만큼 연약했다.

“사랑은 집착하는 거야. 두려움 없이 사랑을 키우고 만에 하나 잃어야 할 때는 태산 같은 집착의 통을 순순히 치르는 거야.”(‘열정의 습관’ 중)라며 맹독성의 사랑을 읊던 전경린. 그가 3년 만에 장편 ‘풀밭 위의 식사’(문학동네)를 들고 돌아왔다. 이번 소설에서도 그는 여전히 사랑을 사유한다. 하지만 “상처를 간직한 역설적인 평온과 태연을 그 여자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작가의 말처럼 사랑에 대한 시선은 예전보다 일상적이고 안온해졌다.

소설은 ‘누경’이라는 여자의 현재와 과거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짚어간다. ‘기현’은 한 술자리에서 우연히 ‘누경’을 만나 끌리게 된다. 그러나 ‘누경’은 ‘기현’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아직 그녀의 생을 지배하는 ‘서강주’와의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강주’는 어머니의 육촌조카이며 그녀가 다니는 대학의 교수이자, 아내가 있는 사람이다. ‘서강주’는 아내를 ‘짐’이라고 표현하지만 그 ‘짐’에 충실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결국 이뤄지지 못하고 서로의 삶을 어지럽히기만 하는 사랑은 이별이라는 두 글자로 마무리된다.

작가는 ‘누경’과 ‘서강주’가 나눈 뜨겁고 애틋하며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녹아버릴 것 같은 사랑의 시간을 오로지 ‘누경’의 일기장을 통해서만 그린다. ‘누경’이 사는 현재에 ‘서강주’는 등장하지 않는다. 또 다른 등장인물들은 성(姓)을 붙이지 않지만, 과거의 사람인 ‘강주’에게는 성을 붙임으로써 그와 거리두기를 한다. ‘누경’이 현재 그녀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내게 하려는 장치다.

“‘세 노르말’(c'est normal), 이 표현은 극복하거나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 역점을 두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안고 일상적인 상황으로 돌아가자는 뜻으로 쓰인다고 했다. ‘세 노르말’.”(‘풀밭 위의 식사’ 237쪽)

어떤 이들의 삶 어느 시간에, 사랑은 손을 대면 데어버릴 만큼 뜨거워야 하고, 가지지 못해 애틋한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때로는 함께 살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 문제없이 이뤄지고, 평온한 삶을 약속하는 사람과 가는 것 또한 사랑이다.

작가는 이 사랑이라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그 누가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한 시선을 통해 정점의 균형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 답은 “극복하기 어려운 일조차 일상화시키는 힘”이며 “내 사랑은 세상을 밝히며 활짝 피어나는 것이면 좋겠다”는 희망이다.

‘누경’이 된 경린, 혹은 경린이 된 ‘누경’은 우리에게 소박하디 소박한 ‘풀밭 위의 식사’가 얼마나 소중한 현재인지, 햇빛 비치는 마룻바닥을 걸레질 할 때의 감각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가르친다.

“과거의 짐과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독립해 온전하게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초월적인지, 현재야말로 매순간 얼마나 눈부신 기회인지…”라는 작가의 말은 그렇기에 진실로 사랑의 열병을 앓고 난 이들을 어루만지는 위무의 손길이 된다.

온도는 낮아지고, 시선은 차분해졌지만 그의 작품을 관통해 온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상대를 허용하며, 더 많이 깊이 사랑한 사람은 사랑으로 인해 다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자기 진실의 대가를 치를 때 우리의 영혼도 지켜질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