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과 함께 20여년 광야교회 임명희 목사 “영등포 뒷골목이 복음화되면 내 사명은 끝날 것”

입력 2010-01-29 17:34


10년 넘게 노숙인 생활을 했던 백영민 집사가 “정월 초하루 먹은 마음이 섣달그믐까지 가는 모습에 감동돼 예수를 믿게 됐다”며 존경스러워하는 광야교회 임명희(53) 목사. 임 목사는 “첫 마음이 변한다면 그건 변질”이라며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맡기신 목회는 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광야교회 노숙인 무료급식엔 한 끼 평균 350∼450명이 찾는다. 한 끼에 무료급식 비용은 150만원. 하루 세 끼, 한 달이면 4500만원에 이르는 거금을 무료급식에만 쏟아붓고 있다. 이걸 20년 넘도록 한결같이 해온 것이다. 비용은 광야교회와 영등포구청이 합해서 절반 가까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독지가들이 대고 있다. 그들이 어떤 분들인지 소개해달라고 하자 임 목사는 “나도 그분들이 누군지 모른다”고 했다. 얼굴 없는 기부자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는 “우린 하나님이 주시면 먹고 안 주시면 굶는다는 믿음으로 해왔는데, 하나님이 지금까지 다 채워주셨다”며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는 요즘 성도들과 함께 거의 매일 밤마다 영등포 역전을 한 바퀴 돈다.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하는 노숙인들이 걱정돼서다. 뜨거운 국물의 라면도 대접하고 내복도 쥐어주면서 임 목사가 노숙인들에게 빠뜨리지 않고 건네는 말이 있다. “꼭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이를 통해 거의 매일 밤마다 한 명씩의 결신자가 나오고 있다. 그는 “비록 빵 한 조각을 위한 결신일 수도 있지만 결신자는 나중에 어려움에 처했을 때 반드시 주님을 찾게 된다”고 강조했다.

임 목사는 “아세아연합신학대 2학년이던 1987년 영등포역에 전도하러 갔다가 하나님께 사로잡혔다”고 했다. 당시 영등포역 뒷골목은 서울에서 강력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 중의 하나였다. 사창가를 주름잡던 ‘덩치’들은 늘 몸에 칼을 지니고 다녔다. 노숙인들 사이에는 자주 전염병이 돌았다.

중국 선교사를 준비하던 그는 국내 사역을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때 생각난 게 ‘남들이 안 가는 가장 위험한 사역지로 가자’는 신학대 입학 때의 서원이었다. 그는 “영등포역 사역이 중국 선교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주민의 말에 이곳을 선교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칼에 찔려 죽든 전염병에 걸려 죽든 복음을 전하다가 죽자’는 이판사판의 각오로 뛰어들었다.

임 목사는 하루 3끼 무료급식은 물론 동네 사람들에게 쌀을 건네고, 청소와 도배도 해주었다. 하지만 항상 최우선은 복음 전도였다. ‘복음으로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복음의 직격탄을 날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덩치’들은 그런 그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노숙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사창가의 포주나 기둥서방들이 마이크를 뺏거나 주먹질을 해왔다. 주일 예배시간에 참석해 칼을 휘두르는 이들도 있었다. 임 목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주먹으로 때리는 이들에게 “예수 믿고 구원 받으라”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영등포역 뒷골목의 최고 보스가 술에 취한 채 임 목사를 찾아왔다. “당신이 나를 이겼어. 내가 지켜봤는데 당신은 진짜 신자야. 내가 딴데 가서는 꼭 교회 다닐 거야.” 그는 이 한마디를 남긴 채 다음날 다른 지역으로 떠나버렸다. 임 목사는 “복음에 무관심해 보이거나 심지어 복음을 반항하는 사람들이라도 복음 전하는 사람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고 말했다.

지금 영등포역 일대엔 쪽방촌 560명, 시설 110명, 역전 150명, 집창촌 50명 등 8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임 목사의 목회 대상은 바로 이들이다. 임 목사는 “이 동네가 완전 복음화되면 내 사명은 끝나는 것”이라며 “그때는 새로운 사역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백 집사처럼 노숙인이나 떠돌이였다가 완전히 변화된 사람은 30명 정도. 23년의 사역 기간에 비해서는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숫자다.

임 목사는 “노숙인들이 비록 오랜 세월 교회는 나오지만 다시 알코올 중독으로 돌아가는 등 옛생활을 못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며 “백 집사처럼 한 사람이 변화되기까지는 참 많은 세월이 필요한 게 바로 노숙인 사역”이라고 말했다. 임 목사가 “제대로 된 노숙인 사역을 위해서는 반드시 치유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록 임 목사가 “이 동네가 완전히 복음화되면”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그는 이미 중독자 사역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서울이 아닌 경기도에 중독자 치료원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겠다는 것. 할 수 있으면 올해 내로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도 내비쳤다. 이를 통해 광야교회가 노숙인을 넘어 사회 치유에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그는 알코올, 게임 등 국내 중독자가 800만∼900만명에 이른다는 사실에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다. “노숙인 사역을 하다 보니 결국 중독이 문제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분들을 치료할 수 있는 분은 의사도 아니고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가 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치유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 성령의 능력을 입을 때 근본적인 치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영등포역 뒷골목을 복음으로 평정하다시피 한 사역과 삶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검은 콧수염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꿈이 독립투사였다는 그는 “지금은 천국의 독립투사가 됐다”며 껄껄 웃었다.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