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교회 백영민 집사의 10년 노숙생활 탈출기

입력 2010-01-29 14:49


“날씨도 추운데 이제 술 좀 그만 마시고 일을 하셔야죠.”

영등포 역전 광야교회 골목으로 들어오던 백영민 집사가 길가에 앉아 있는 노숙인들을 향해 한마디 건넨다. 백 집사는 길거리의 노숙인들을 볼 때마다 20여년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생명의 귀중함을 알고 보니 그 시절이 그렇게 후회될 수가 없다”는 백 집사. 그가 노숙인 신세가 된 건 28세 때다. 6년간이나 키워온 애틋한 첫사랑이 무위로 돌아가자 그는 죽기로 결심했다. 쓰린 가슴속에 날마다 술을 들이붓다시피 했다. 하지만 생명은 질겼다. 장파열만 찾아오지 죽음은 끝내 그를 비켜갔다. 그때부터 영등포 역전에서 지내게 됐다.

고향이 목포인 그는 고생이란 걸 모르고 자랐다. 과외도 받았고, 어울려 지낸 친구들은 죄다 지역 유지의 자녀들이었다. 하지만 10년간의 노숙인 생활은 그의 신분을 180도로 바꿔놓았다. 친구들과는 연락이 두절됐고, 수소문 끝에 찾아왔던 친척도 술 마시고 자빠져 다친 얼굴의 그를 보고 다시는 찾지 않았다.

그런 그를 새사람으로 바꿔놓은 건 광야교회 임명희 목사다. 하루도 빠짐없이 노숙인들을 찾아와 복음을 전하고 배식을 하는 임 목사의 변함없는 모습과 착한 성품이 그를 매료시켰던 것이다. 백 집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목사님은 정월 초하루 먹은 마음이 섣달그믐까지 가는 분”이라고 말했다.

당시 전도사 신분이었던 임 목사가 기억하는 백 집사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한번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한 달 넘게 술을 마셨어요. 날품팔이로 번 돈을 모두 날리고 심지어 TV까지 갖다 팔 정도였죠. 그리고 술만 마시면 옷을 홀딱 벗은 채 죽겠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다니곤 했어요.”

하지만 광야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면서 백 집사의 단주(斷酒) 기간도 길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 달, 나중엔 6개월, 1년 가까이 되도록 술을 안마시기도 했다. 물론 중간중간 백 집사는 “술을 마셔야 한다”며 임 목사에게 돈을 꾼 적도 있다. 그때마다 임 목사는 거절하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게 임 목사의 설명. 술과 일 사이를 왔다갔다하던 백 집사는 3년이 지나자 술과는 영영 이별을 했다. 목동 임대아파트를 분양받고 영등포를 떠난 것도 벌써 6년이나 됐다.

그 시절 백 집사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이란 찬송가. 한 절 한 절의 찬송가 구절이 백 집사의 상처난 마음을 어루만졌던 것이다. 그는 “너무 사연이 많아 눈물 속에서 살다가 영등포 역전 골목까지 떼밀려 오게 됐는데 그 찬양을 들으며 마치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아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렸는지 모른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새사람이 되고나서 며칠 후 백 집사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현듯 떠오른 한 노래가 그의 입술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곡이 ‘노숙자 굿바이’란 자작곡이다. “방황하던 그 시절을 잊어버리고, 내 모든 나쁜 습관 벗어버리고 지혜롭게 행동하며 살아가며는 한맺힌 내 가슴에 꽃이 핀다네”로 시작되는 구구절절 백 집사의 마음을 담았다. 지금도 백 집사는 당뇨병 합병증으로 1주일에 3번 투석치료를 받는 날 외엔 광야교회 예배에 나와 이 곡을 노숙인들에게 불러준다.



“교회의 모델이 되고 예수님의 산증인이 되어야겠다”는 게 노숙인에서 새사람이 된 백 집사의 평생 다짐이다. 나이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백 집사는 “50대라고만 해달라”며 끝내 밝히기를 거부했다. 숫총각이라는 그는 지금 결혼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