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산업계 3대 大戰-(하) 특허 전쟁] 승소땐 천문학적 로열티… ‘다윗의 반격’ 시작되다

입력 2010-01-28 18:39


‘골리앗을 이긴 다윗.’ 충북 청주시 복대동에 있는 자전거 부품 업체인 MBI에 이런 별명이 붙은 건 지난해 6월. 자전거 속도변환 장치 기술을 두고 세계 랭킹 1위 자전거 회사인 일본의 시마노와 맞붙은 특허 분쟁에서 이긴 뒤부터다.

소송 규모만 최대 1조원대. 연간 매출 3조5000억원에 5500여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골리앗’ 시마노가 당시 종업원 8명밖에 안 되던 벤처기업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특허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기업마다 기술 경쟁에 열을 올리면서 유사기술 개발과 기술 유출, 모방이 늘어남에 따라 특허 분쟁도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국내 기업이 매년 해외 업체에 로열티로 지급하는 특허사용료만 수조원대.

하지만 국제 특허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던 국내 업체들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면서 최근 들어 승전보가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다윗’의 반격이 시작된 셈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한국 기업이 외국 기업을 상대로 특허 소송을 제기한 것은 2005년 13건에서 매년 증가해 지난해에는 40건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지식경제부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현재 노키아와 모토로라 등 전 세계 주요 휴대전화 제조업체 19개사를 상대로 배터리 기술 관련 특허침해 소송을 진행 중이다.

소송 규모는 최소 3000억원에서 최대 1조원대. 국책 연구기관이 해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기술특허 소송으로는 최대 규모다.

앞서 미국 가전업체 월풀사는 LG전자의 냉장고 내 얼음 저장 기능이 자사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ITC는 재심 판결에서 LG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신정혁 ETRI 지식재산경영실장은 “국내 업체들마다 고유 기술뿐 아니라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관련 노하우를 축적해가면서 특허 소송에도 점점 자신감이 붙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허 분쟁에서는 이른바 ‘특허괴물(patent troll)’을 빼놓을 수 없다. 특허권을 대량으로 사들인 뒤 기업을 상대로 무차별 소송을 걸어 거액의 합의금(로열티)을 챙기는 특허관리 전문 기업을 말한다.

최근 미국 반도체 기술 업체인 램버스가 삼성전자에 제기한 특허권 소송도 로열티 수입을 노린, 즉 특허괴물의 전략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5년에 걸친 법정공방 끝에 삼성전자는 램버스에 5년간 7억 달러의 특허사용료를 지급키로 했다.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 관계자는 “특허괴물은 소송을 통한 특허권 침해 여부를 가리기보다 수익창출 목적이 대부분”이라며 “적지 않은 기업들은 특허괴물 공세에 시간과 돈을 허비하기보다는 협력관계를 맺거나 적정한 선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려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는 올해부터 특허 분쟁에 따른 국내 기업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기술 및 법률 전문가로 꾸려진 인재 풀을 구성해 대응키로 했다. 또 특허권 소송에 휘말렸을 때 소송비 등을 보장해주는 지식재산권 소송 보험 제도를 실시하고 기업에 보험료 일부를 지원할 방침이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