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황경애 (4) 국제사기 당해 큰 고통… 방송국 취업 재기 몸부림

입력 2010-01-28 17:28


1998년 여름 국제 사기단에 말려들어 전 재산을 잃고 아이들 아빠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이듬해 여름 가출했다. 그 전까지 기도원을 왔다갔다했던 남편이 아예 짐을 싸들고 기도원으로 들어간 것이다.

남편이 갑자기 사라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운데,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뒤에서 수군대고 헐뜯는 소리였다. 심지어 아이들에게까지 상처가 되는 말들을 쏟아냈다.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이들도, 친하게 지낸 이웃들도 모두 등을 돌렸다. 누구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정말 뼛속까지 파고드는 외로움과의 싸움이었다. 집 밖에도 나가지 않고 그저 울분을 토해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뜻밖의 상황에 놀란 아이들의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정신을 번쩍 차렸다.

“내가 우리 애들을 잊고 있었어!”

세 아이를 끌어안고 무릎 꿇고 기도했다. 그리고 이사야 말씀을 읽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 45:7).

우리 인생에 빛이 있을 때만, 평안이 있을 때만 주님이 함께하는 게 아니라 어둠이나 환난 가운데 있을 때도 함께하시는 것이다.

욥을 보라. 욥이 고난 받을 때 가까운 친구들조차 하나님을 원망하라고 했지만, 그는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갑절의 복을 더해 주셨다. 하나님께선 지금 이 시간 나로 하여금 주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고백하게 하셨다.

그 때부터 나와 아이들은 매일 예배를 드리며 시편 23편을 함께 읽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아이들과 살려면 직장을 구해야 했다. 마침 지인의 소개로 개국을 앞둔 한인 방송국에 들어가게 됐다. “방송 일은 전혀 모르지만 아무 일이나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밤을 새워가며 방송 관련 일에 매달렸다. 새벽 일찍 일어나 출근을 서둘렀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에 온몸이 쑤시고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에 몇 번 쓰러지기도 했다. 처음 다짐과 달리 한번은 이렇게는 도저히 못 살겠다 싶어 아들을 불렀다.

“존(한국명 최성찬)! 할아버지께 가서 생활비 좀 받아오너라. 그래도 할아버지는 평생 의사로 사셨으니 우리보다 형편이 나으실 거야.”

그런데 이제 겨우 열 살을 넘긴 아들의 말이 폐부를 찔렀다.

“엄마, 할아버지보다 더 부자이신 하나님께 달라고 하세요.”

순간 야속하고 화도 났지만, 아들의 말이 절대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이후부터는 절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다. 방송 일은 의외로 잘 맞았다.

얼마 되지 않아 혼자 기계를 직접 다루기도 하고 생방송도 진행하게 됐다. 제작, 편성뿐 아니라 글도 직접 쓰고 행정 업무도 책임졌다.

어느새 방송 관련 총 책임자로 올라섰다. 그렇게 3년을 방송국에서 일했고, 이후 사장이 바뀌면서 나도 일을 그만두게 됐다.

그 시절, 집에 돌아와 지치고 울고 싶을 때면 시를 썼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시로 쓰면서 마음을 달랬다. 그 시들을 모아 첫 시집 ‘그 사랑 향기 되어’를 출간했다. 주님을 향한 내 마음의 고백도 담았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