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국내 시판 … 전기자동차 ‘이존’ 출·퇴근 체험기

입력 2010-01-28 18:10


운전대 키 박스에 열쇠를 꽂고 오른쪽으로 돌린 채 엔진음을 기다리며 잠시 있었다. 15년 전 운전을 시작한 뒤 시동은 항상 이렇게 걸었다. “부∼릉”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잠잠하다. 대신 계기판에 불이 들어왔다. 연료 게이지가 휴대전화 배터리 잔량 표시처럼 막대눈금이다.

오른손이 습관대로 변속기 레버를 찾아 우측 아래로 내려갔다. 잡히는 건 사이드 브레이크뿐. 계기판 밑에 ‘D(전진)’와 ‘R(후진)’만 표기된 버튼이 보인다. ‘D’를 누르고 가속페달을 밟자 움직인다. 25일 오전 8시 국산 2인승 전기자동차 ‘이존(e-zone)’과의 첫 출근은 이렇게 시작됐다.

국토해양부가 21일 자동차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최고 시속 60㎞ 안팎의 저속 전기차(NEV·Neighborhood Electric Vehicle)가 4월부터 도로를 달릴 수 있게 됐다. 2008년 이존을 개발한 뒤 관련법이 없어 수출만 해 온 전기차 업체 CT&T도 국내 시판을 준비 중이다.

이날 출근 루트는 서울 잠원동 아파트→신반포로→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흑석동 중앙대 입구→여의도 63빌딩→국민일보의 약 10㎞. 차종은 시험주행 허가증이 발급된 이존 고급형. 리튬폴리머배터리가 탑재됐다. 최고 시속 70㎞에 한 번 충전으로 100∼110㎞를 간다고 한다.

경차 마티즈 크리에이티브보다 길이가 1m2㎝, 폭은 15.5㎝ 작다. 아파트 옥외 주차장 비좁은 길을 여유롭게 통과했다. 20여m 앞에 걸어가던 초등학생 둘이 서너 걸음 뒤까지 다가온 이존을 뒤늦게 발견했다. 길을 내주며 신기한 듯 쳐다본다.

엔진 대신 모터로 구동하는 전기차 기본 소음은 “위∼잉” 모터 회전음과 “기∼익” 변속음뿐이다. 시속 20㎞ 이하에선 모터음도 희미하다. 아이들은 소리 없이 다가간 차를 알아채지 못했다.

이면도로에 들어서자 나타난 과속방지턱. 무심코 지나다 ‘덜컹’ 하며 차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이번엔 도로가 움푹 패어 있다. 속도를 줄였지만 역시 ‘덜컹’.

이존은 가볍다. 160㎏ 리튬배터리를 포함해도 740㎏(마티즈 크리에이티브 910㎏). 알루미늄 프레임에 차체는 강화 플라스틱이다. 부품도 600여개(엔진 차량은 2만여개)뿐이다. CT&T 관계자는 “마티즈용 서스펜션(노면 충격 흡수장치)을 썼는데 일반 승용차 승차감과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신반포로 통행량은 교차로마다 신호대기 한 번에 통과할 정도였다. 가속페달을 깊이 밟자 시속 40㎞를 쉽게 넘어선다. 택시와 나란히 달리다 빨간 신호에 멈추고, 다시 나란히 달리다 교차로에 섰다. 이수교차로까지 교통 흐름을 무난히 따라잡는다.

동작지하차도를 내려갈 때 시속 60㎞에 근접했다. 가속페달을 최대한 밟았지만 오르막에서 속도가 서서히 줄더니 시속 50㎞ 밑으로 내려갔다. 국립현충원∼한강현대아파트 언덕길과 노들길로 들어서는 노량북고가차도에서도 마찬가지다.

평지에서 속도계 눈금이 가리킨 최고치는 시속 60㎞를 살짝 넘었다. 언덕에서 이 속도를 유지하려면 시속 70∼80㎞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더 큰 배터리를 달아야 하고, 그렇게 되면 값이 비싸진다. 이존은 시내 도로 속도 상한선인 시속 60㎞에 맞춰 만들어진 차다.

회사 도착 시각은 오전 8시25분. 평소 휘발유 승용차로 올 때보다 5분 더 걸렸다.

회사 지하주차장 벽에 220V 전원 콘센트가 여러 개 있다. 충전은 간단했다. 콘센트 옆에 주차하고 주유구 대신 있는 충전단자와 콘센트를 케이블로 연결하면 된다. 가정용 전원에서 4시간(급속충전기로 20분)이면 100%(6.1㎾h) 충전된다.

충전 6시간 만인 오후 2시30분, 시동을 걸었다. 지하 7층에서 지상까지 가파른 진출로를 무리 없이 오른다. 저속 주행이라 언덕이지만 힘이 남았다. 오르막 중간에 차를 세우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는데 뒷걸음질이 별로 없다.

전기차 가속페달은 일종의 스위치다. 밟으면 배터리에서 모터로 전기가 흐르고, 놓으면 끊긴다. 가속 탄력 없이 정지한 상태에선 가속페달을 밟지 않으면 바퀴가 안 움직인다. 언덕에서 정차할 때 약간 뒤로 미끄러지는 건 차 무게 때문이다.

가득 채운 배터리가 얼마나 오래 버틸까? 마포대교를 건너 공덕오거리와 신촌로터리를 지나 이화여대 부근에 도착한 게 오후 3시8분, 주행거리 약 9㎞. 연료 게이지는 막대눈금 10개 모두 불이 들어와 있다. 눈금은 파란색 7개와 빨간색 3개다. 파란 눈금이 다 사라지면 재충전을 준비해야 한다.

충정로와 광화문사거리를 지나 종로에 들어섰다. 차량 흐름은 평균 시속 30∼40㎞. 저속 전기차가 차량 소통을 방해하리란 우려, 적어도 도심에선 기우다. 정체 없는 구간에서도 시속 60㎞ 제한 규정을 ‘성실히’ 지키며 흐름을 소화했다.

흥인지문사거리에서 우회전해 동호대교를 건넜다. 도산대로와 영동대로를 지나 오후 4시36분 대치역(지하철 3호선) 부근에 이르자 첫 번째 파란 눈금이 사라졌다. 이때까지 달린 거리는 약 30㎞. 이후 눈금 사라지는 주기가 짧아졌다.

방향을 틀어 강남대로 신반포로를 지나고 아침 출근 루트를 되밟았다. 첫 눈금이 사라진 뒤 5㎞쯤 달리자 눈금 2개가 잇따라 꺼졌다. 63빌딩까지 갔을 때 남아 있는 파란 눈금은 1개. 여의도를 뱅뱅 돌았다. 총 주행거리 61㎞에서 빨간 눈금 3개만 남았다. 이제 다시 충전해야 한다.

주행 막바지 눈금 소진 주기를 적용하면 빨간 눈금 3개로 달릴 수 있는 거리는 5㎞가 채 안 된다. 100% 충전된 배터리로 약 66㎞를 달리는 셈이다. 이존 카탈로그에 기재된 1회 충전 주행거리는 100∼110㎞. 34∼44㎞ 차이는 왜일까?

CT&T 측은 “배터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기온”이라며 “겨울엔 여름보다 20∼30% 효율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또 배터리는 고속주행 때 가장 많이 소모된다. 노면 등 도로 환경과 운전습관도 영향을 준다. 100∼110㎞는 CT&T 공장이 있는 충남 당진 외곽도로에서 여름에 측정된 수치다. CT&T는 배터리 잔량과 함께 주행 가능 거리를 숫자로 표기하는 디지털 계기판을 개발 중이다.

61㎞를 달린 연료비는? 이존을 가정에서 한 달간 20회 충전할 경우 전기료는 대략 1만원 안팎. 한 번에 500원꼴이다. 마티즈 크리에이티브의 공인 연비는 ℓ당 17㎞, 25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ℓ당 평균 가격은 1670원. 마티즈로 휘발유 3.6ℓ, 6012원을 들여 달릴 거리를 이존은 500원에 간 것이다. 12분의 1 수준이다.

이날은 퇴근이 늦었다. 밤 11시20분 회사를 출발해 한산한 도로를 시속 50∼60㎞로 달리니 20분이 채 안 걸려 집에 도착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