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정의 사진] 나무 심는 사진가
입력 2010-01-28 18:10
1960년대 한 젊은이가 브라질에서 정치 탄압을 받아 아내와 함께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본래 전공인 경제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커피기구의 경제학자가 됐다. 근무를 시작한 뒤 어느 날 아프리카를 방문했다. 눈앞에 펼쳐진 아프리카는 처참했다. 물은 메말랐고, 사람들은 배고픔에 허덕였다. 농업경제학자로서 무거운 책임감에 시달렸으나 무기력했다.
그 무렵 건축학을 전공한 아내의 카메라를 쓰게 됐다. 셔터를 누르다 보니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던 아프리카의 현실을 사진은 더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나이 스물아홉에, 그는 경제학자 꼬리표를 떼어내고 통신사 사진기자가 됐다.
부족한 문명의 혜택 속에서도 당당히 살아가는 중남미 원주민들을 기록한 ‘다른 아메리카인’을 시작으로, 선진국의 풍요로움은 제3세계 저임금 노동과 천연자원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노동자’ 등을 통해 20세기 후반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세바스치앙 살가두 이야기다. 그는 흑백사진의 오스카상으로 꼽히는 유진 리차드상을 비롯해 50여 차례 세계적인 사진상을 거머쥐었고, 1994년까지 머물렀던 보도사진 작가 그룹 매그넘에서도 간판스타로 통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최소 1∼2년 준비기간을 거쳐 5∼10년 단위로 작업을 완성해 가는 긴 호흡과 큰 스케일, 그리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극적인 장면 등을 담아내는 그의 작업 태도와 완성도는 늘 사진가들에게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살가두가 지난 30년간 천착해온 ‘아프리카’가 경기도 고양시 고양아람누리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2월 28일까지). 사진계의 거장이 됐지만 ‘아프리카’의 작품들에는 여전히 경제학자의 통찰이 살아 있다. 그는 내전과 가뭄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 비극의 뿌리를 과거 제국주의에서 찾고 있다. 100여개 언어가 쓰일 만큼 다양한 종족과 문화가 뒤섞여 있던 순한 대륙에 강대국들이 들어와 힘의 논리로 국경을 나누고 자원을 빼앗아 갔다. 그 과정에서 종족 갈등을 부추겨 내전은 깊어졌고, 자연은 파괴돼 걷잡을 수 없는 재앙으로 번져갔다고 사진은 말하고 있다. 살가두의 아프리카 사진이 단순한 연민의 시선과 다른 힘을 가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그는 2012년 완성을 목표로 ‘제네시스’(창세기)라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름 그대로 태초부터 존재했을 대자연의 생명력과 원시문화의 힘을 좇아가는 과정이다. ‘아프리카’ 전에서 일부 공개된 ‘제네시스’의 사진들은 분위기부터 확 다르다. 마치 생의 말미에 이르러 긍정의 힘을 믿는 사람의 작업 같다.
전시장 마지막 부분에 소개된 그의 활동 내용을 보면 대자연의 생명력 또한 저절로 지켜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450종 146만 그루. 지금까지 살가두가 아내와 함께 브라질에 심은 나무들이다. 무려 180만평에 심은 나무는 숲을 이뤄 이제 국립공원이 됐다. 사진은 어떤 형태로든 세상과 사람을 변화시킨다. 경이롭다.
<포토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