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In&Out] 현대자동차 첫 여성 임원 김화자

입력 2010-01-28 18:16


“딸에게도 영업 해보라 권해요”

1987년 주부 영업사원으로 입사한 김화자(55)씨는 지난해 말 ‘기업의 별’이라는 임원(이사대우)이 됐다. 현대자동차 최초의 여성 임원이다. 서울 여의도지점장으로 재직하다 승진과 함께 1월부터 26개 지점과 대리점을 관리하는 충북지역본부장을 맡았다. 첫 달을 결산하느라 분주한 그를 26일 충북 청주 사무실에서 만났다.

-자동차 영업은 남자들의 세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분야에서 여성으로서 성공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자동차 영업이 여자들에게 쉽진 않아요. 제품도 어렵고, 남성 고객을 주로 만나니까. 그런데 남성적인 분야에 여성이 들어가서 할 수 있는 일이 의외로 많아요. 여성들은 세심하고 진솔하고 꾸준하잖아요. 따뜻하고. 그런 걸로 승부하면 돼요. 저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가진 경쟁력은 부드러움밖에 없어요.”

-부하 직원들도 대부분 남자일 텐데 여성 관리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습니까?

“제겐 적(敵)이 없었던 것 같아요. 참았거나 양보했거나, 혹은 무디거나, 그랬을 거예요. 저하고 갈등을 가졌던 직원들이 거의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괴짜라고 하는 직원이라도 장점이 있어요. 저는 그 장점을 높이 사줬어요. 어디를 가든 사람 인수인계를 받지 않았어요. 무조건 내가 너희들을 예뻐한다고 말하죠. 사람은 마음이 상당히 중요한 거 같아요. 제 마음과 신뢰를 주면 그 사람을 얻을 수 있어요.”

-부하 직원들을 혼내야 할 땐 어떻게 하세요?

“저는 욕도 웃으면서 해요. 정색하고 욕 못해요. 그러면 큰일나죠. 그 사람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마음을 사야 해요. 그러려면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해야 돼요. 제가 예쁘게 보고 자꾸 칭찬하면 그 친구도 미안해서 열심히 하게 되죠. 야단만 치면 반발하죠. 입사 10년 이상 되면 불러서 야단친다고 안 바뀌어요. 어떤 경우라도 마음에서 그 사람을 버려서는 안 돼요.”

김 이사는 동덕여대를 졸업했고, 졸업과 동시에 결혼해 아이 둘을 낳았다. 큰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그는 31세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뒤늦게 일을 시작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이들 키우는 게 행복하긴 한데 좀 허전했어요. 나는 어디에 있을까, 나를 찾고 싶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일할 데가 없는 거예요. 세일즈밖에 할 게 없었어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제일 힘든 게 뭐였나요?

“아무래도 아이들 때문에 힘들죠. 남편은 그래도 이해를 구할 수 있잖아요. 어느 날 애가 우산도 없이 학교 갔다가 비를 쫄딱 맞고 울면서 집에 왔어요. 아이는 감기에 걸렸고, 남편은 당장 그만두라 하고. 너무 가슴이 아픈 거예요. 사표를 써서 냈는데, 상사가 말렸어요. 지금 그만두면 평생 일 못할 거라고. 그리고 그만두더라도 잘할 때 그만두라고. 그래야 남편이나 아이들한테 당당할 수 있다고.”

-요즘 젊은 여성들은 전업주부가 꿈이라는 얘기를 종종 합니다. 전업주부 시절이 그립진 않은가요?

“저도 때로는 전업주부 시절을 그리워해요. 휴일이 참 달콤하잖아요. 이틀 쉬는 건 행복해요. 그런데 3일째 되면 회사에 나오고 싶어요.”

-회사에 가는 게 행복한가요?

“늘 감사한 게 뭔지 아세요? 첫 번째는 제가 지금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자리는 그 다음이죠. 제 나이에 여성이 일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게 흔치 않아요. 그리고 일을 하면서 얻은 게 참 많아요. 소극적이고 눈물도 많고 그랬는데 일 하면서 적극적으로 변했어요. 시야도 넓어졌고 남편도 이해하게 됐고 성격도 원만해진 것 같고. 가장 많이 얻은 건 자신감인 것 같아요.”

김 이사는 현대차 부녀사원 1기다. 32명 동기 가운데 지금까지 회사에 남아있는 이는 2명뿐. 남은 동기 한 명은 지점장이다. 김 이사는 97년 파리공원(서울 목동) 지점장을 시작으로 서울과 수도권 6개 지점을 돌며 13년간 지점장 생활을 했다. 현대·기아차 440명 지점장 중 여성은 지금도 2명에 불과하다.

-직장에서 성공하는 여성들은 여전히 드문데, 이유가 뭘까요?

“여성들이 안주하는 경우가 많아요. 스스로 꿈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고. 더 높은 꿈을 가지고 부단히 노력해야 돼요. 소극적인 생각은 금물이에요.”

-가정 일과 회사 일이 충돌하는 경우도 많을 텐데, 그럴 땐 어떻게 합니까?

“가족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어요. 회사보다는 가족에게 부탁을 하죠. 회사는 이해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아니잖아요. 업무에서는 여성이니까, 주부니까, 이런 게 통하지 않죠.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아이들 데리고 회사에 나가서 밀린 일을 한 적도 많아요.”

-스카우트 제의도 여러 번 받았을 것 같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죠. 그런데 그동안 회사가 제게 기회를 많이 줬어요. 도움을 준 사람들도 많고. 이 자리를 지키는 게 의리라고 생각했죠. 무엇보다 제가 나가면 여성 후배들의 앞길을 막아놓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여자치고 의리가 있다는 말을 들었죠.”

김 이사는 가족과 떨어져 청주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그는 “여성이기 때문에 서울에서만 근무해야 한다면 그것도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영업은 전형적인 ‘을(乙)’의 영역입니다. ‘갑(甲)’을 부러워한 적은 없습니까?

“영업은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에요, 진짜로. 관리 파트는 남들과 경쟁하지만 영업 파트는 순수하게 자기가 일한 것만 가지고 인정받고 자기가 일한 만큼 다 돌려받아요. 저는 모든 사람들이 영업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현장에서 배우는 게 너무 많아요. 전 인내심도 영업에서 배웠어요. 영업을 하려면 많이 참아야 하잖아요? 모시고, 감동 주고, 노력하고, 준비하고. 그게 세상 살아가는 기본이에요. 저는 딸만 둘인데 걔네들한테도 영업을 해보라고 얘기해요.”

청주=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