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잔혹의 정신의학 300년사… ‘정신의학의 역사’

입력 2010-01-28 18:04


정신의학의 역사/에드워드 쇼터/바다출판사

1876년 출간된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의 주인공 톰 소여는 20세기 들어 입지가 한 순간에 뒤바뀐다. 이전까지 전 세계 독자들을 흥분시킨 그의 모험심은 사내아이의 성격을 규정하는 특징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정신과 의사들은 그런 행동이 ‘미소 대뇌 기능부전’이라고 진단했다. 졸지에 톰 소여는 뇌손상이 있는 아이가 된 것이다.

한 때 정상적인 모습이 한 순간에 정신질환으로 둔갑할 수 있는 것은 정신질환이 객관적이고 생물학적인 근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규범에 의해 규정되는 경향이 짙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이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이자 의학사학자인 에드워드 쇼터는 지난 300년 동안 정신질환을 앓았던 사람이 어떻게 다뤄져 왔는가를 정신의학사를 통해 추적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정신질환자는 항상 존재했다. 하지만 사회와 의학이 그들을 다루는 것은 크게 다른 양상을 보인다. 오늘날 정신질환이 세분화되고 구체화 되는 것은 다분히 산업적인 측면의 요인이 강하다. 요즘은 누구나 정신과를 부담 없이 찾는다. 감기가 걸리면 병원을 찾듯, 마음의 병이 생기면 병원을 가는 게 당연한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육체적 질병에 반드시 의사가 필요한 것과 달리 요즘의 정신과 치료는 꼭 정신과 의사가 아니어도 된다. 그저 환자가 늘어놓는 불평을 들어주고 적당히 맞장구 쳐주는 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90년 브라운 대학 정신과 교수인 피터 크레이머는 미용 정신약물학이라는 달콤한 단어를 생각해냈다. 그리고 그 단어를 앨리 릴리사가 만든 항우울제 프로작(prozarc)에 붙였다. ‘안녕한 상태보다 훨씬 더 좋게’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고학력 중산층은 이 약을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됐다. 오히려 저녁 식사시간에 약의 효용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먹는 비타민 정도로 인식했다. 제약회사들은 갖가지 로비를 통해 새로운 질환 이름을 개발해냈고, 거기에 맞는 약도 양산해냈다. 의사는 약을 처방하는 데 필요한 사람 정도로 의미가 축소됐다.

하지만 불과 200년 전만 해도 정신질환은 곧 사회적 죽음을 의미할 정도로 치명적이고 위험한 것으로 인식됐다. “튼튼한 남자나 여자가 미쳤다고 간주되면, 마을에서 이들을 관리하는 방법이라고는 오두막 바닥에 구멍을 파서 밀어 넣은 다음 기어 나오지 못하게 덮는 것이다. 구멍의 깊이는 1.5m 정도…대개는 그 안에서 죽는다.”(1817년 아일랜드 지역구 의원의 기록)

20세기 전까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처리’됐다. 이들은 비좁고 어둡고 습한 곳에서 오물 냄새에 절어 있는 게 일상이었다. 마을에서는 광인(狂人)이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치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세 시대에는 머리 속에 ‘광기의 돌’ 때문에 정신이상이 생긴다고 믿어 일단 머리를 절개하는 외과적 처치를 했다. 치료라기보다 의학적 거세에 가까웠다.

18세기 후반 이후 계몽주의적 의사들이 등장하면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이뤄진다. 의사들은 정신질환자를 치료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고, 그들이 이상을 일으키는 것이 생물학적 문제라고 판단하게 됐다. 특히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은 고학력 중산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정신질환에 대한 심리적 문턱을 낮추는데 일조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가 수용소에 갇혀야 하는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몇 시간 상담으로 해결할 수 있는 비교적 멋진 문제로 치환 됐다.

오늘날 프로작 같은 약물이 등장하기 전까지 정신질환에 대한 외과적 수술은 끔찍함 그 자체였다. 1949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에가스 모니즈는 뇌엽의 일부를 파괴하는 뇌엽 절제술로 인간의 뇌를 파헤쳤다. 30년대에는 인슐린으로 혼수상태에 빠뜨렸다가 깨어나게 하는 인슐린 요법, 메트라졸로 경련을 유도해 증상을 개선하는 메트라졸 경련요법 등이 유행했다. 38년에는 전기충격으로 정신질환을 다스리려는 전기충격요법이 등장하기도 했다. 모두 정신질환의 원인을 모른 채 증상완화에만 초점을 맞춘 치료법이었다. 약물이 범람하는 요즘도 정신질환에 대한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