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고세욱] ‘2아’를 아시나요

입력 2010-01-27 23:33


“투아(2아)를 아시나요?”

올 들어 인터넷상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2아’다. 하루가 멀다 하고 2아에 대한 담론으로 떠들썩하다. 식사자리나 모임에서도 2아를 빼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 2아를 아는지 접해봤는지 여부가 신세대와 구세대를 가르는 기준이 돼버렸다. 2아란 영화 ‘아바타’, 스마트폰 ‘아이폰’을 일컫는다.

2아 중 아바타를 최근 극장에서 3D화면으로 봤다. 평일 휴무일에 갔음에도 간신히 좌석을 잡을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몰랐다. 3D 안경 쓰고 보면 머리가 아프더라는 주변의 지적이 있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기발한 발상 및 환상적 컴퓨터그래픽 효과에 놀라느라 머리 아플 새도 없었다.

자원이 고갈된 인류가 생존을 위해 판도라 행성 종족과 유사한 아바타를 만들어 탐사에 나선다는 상상력에 무릎을 쳤다. 여기에 첨단기술과 러브스토리의 결합, 친환경과 반제국주의 등의 메시지도 흥미를 돋웠다. “1만3000원 내고 우주여행 하는 것”이라는 주위의 찬사는 빈말이 아니었다. 다음날 아바타가 관객 1000만을 돌파했다.

또 다른 ‘아’인 아이폰은 아직 사지 않았다. 쓰고 있는 휴대전화 약정이 남아있다는 제약을 깰 배짱이 없었다. 남의 아이폰을 어깨 넘어 힐끗거리는 정도다. 하지만 아이폰이 몰고 온 변화는 잘 알고 있다.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소프트웨어산업의 중요성을 눈뜨게 해줬다. 아이폰에 진땀 흘리는 삼성전자를 보면 폐쇄적인 유통질서(기존사고)에 안주하다간 초일류기업도 낙오할 수 있다는 교훈도 얻었다.

2아를 접한 많은 이들이 ‘아빠(아이폰 아바타에 절대 지지를 보내는 사람)’가 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국수주의적 내용과 마케팅으로 손쉽게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영화에 아바타가 본때를 보여 달라는 글이 차고 넘친다. 우리 부서 IT전문기자가 아이폰 비판 글을 쓰면 아이폰빠들이 득달같이 댓글 공세를 편다. 지나친 맹목성은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들의 지적에는 창의와 혁신, 교감과 소통·다양성이라는 2아의 코드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한국 현실에 대한 조롱이 담겨 있다.

그래도 기업들에게는 희망을 걸어본다. 생존을 위한 체질개선으로 세계 일류 품목들을 만들어왔던 우리기업의 DNA를 믿는다. 아이폰 같은 창의적 제품개발이 멀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하지만 국가의 미래비전을 제시해야 할 리더십 부분에 이르러선 한숨만 나온다. 며칠 전 친구들과의 저녁자리에서도 어김없이 아바타와 아이폰 얘기가 주를 이뤘다. 한 명이 “그럼 우리정치의 2아를 아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하자 ‘아사리판’과 ‘아귀다툼’이란다. 배꼽을 잡았다.

진보와 보수 간 끝없는 증오·갈등, 세종시로 대변되는 추악한 정쟁 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표현이다. 아사리판과 아귀다툼에는 오직 독선과 아집, 일방주의만이 똬리를 튼다. 그 속에서 창의와 혁신, 소통은 설자리를 잃는다. 국민은 이를 다 아는데 위정자만 모르는 것 같다. 오히려 아사리판과 아귀다툼에 젖어있는 정치인들이 겉으로는 아이폰·아바타식 코드를 지향하는 이율배반적 태도가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우리는 왜 닌텐도 게임기를 못 만드느냐”고 말해 네티즌의 빈축을 샀다. 요즘 같아서는 애플 같은 컴퓨터회사에 “왜 아이폰 같은 제품을 못 만드느냐”며 다그칠 것 같다. 일방주의적이고 독선적인 국정운영을 하면서 창의적 제품을 만들라는 주문은 모순이다.

정부여당과 보수세력은 요즘 맘에 들지 않는 판결을 이유로 진보 죽이기에 한창이다. 하지만 이들은 며칠 전만 해도 다양성을 수용하고 소통을 추구하기 위해 사회통합위원회를 세우자고 떠들어댔다. 겉과 속이 다른 양두구육이란 단어는 한국비빔밥이 아닌 위정자들에게 쏟아져야 한다.

마이너스 3D수준의 사고를 지닌 지도급인사들을 보고 있노라면 왜 사람들이 아이폰과 아바타에 열광하는지 알 것 같다. 2아 신드롬이 반가우면서 씁쓸함을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고세욱 인터넷뉴스부 차장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