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황경애 (3) 수련회 중 모녀 익사 위기… ‘보이지 않는 손’이 구조
입력 2010-01-27 22:00
“엄마∼!” 막내딸 조이(한국명 최은희)가 파도에 휩쓸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때 조이의 나이 다섯 살. 해변에 있던 나는 정신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내가 수영을 못 한다는 것도 생각지 못했다. 조이와 나는 순식간에 파도에 밀려 먼 바다로 떠밀려갔다. 멀리서 애타게 나를 찾는 아이들의 목소리조차 아득해졌다. 순간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조이를 들어올려 최대한 얕은 바다로 집어던졌다. 조이만이라도 살기를 바랐다.
마침 인근에서 윈드서핑을 즐기던 아이들이 조이를 건져내 아이는 무사했다. 그 장면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몸에 힘이 빠지고 점점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내가 죽는구나.’
숨을 쉴 수 없었다. 첫 딸 그레이스(한국명 은혜)가 태어나고, 세 아이와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지금 내가 죽으면 우리 막내 조이는 어떡하나! 엄마의 손길이 한창 필요한데… 하나님 저 좀 살려주세요. 이번 한번만 더 도와주세요!”
흩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기도했다. 그때 하늘에서 밧줄이 내려왔다. 있는 힘을 다해 그것을 부여잡았고, 어느새 나는 큰 숨을 내쉬며 정신을 잃었다.
그 기억은 지금도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된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우리 세 아이는 해변으로 나온 나를 보고 “엄마가 죽었다”며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모두 내가 살아난 것이 기적이라고 했다.
그날은 우리 교단이 속한 연합수련회 기간 중이었다. 때마침 다른 교회에서 온 아이들 가운데 한 그룹이 자동차에 윈드서핑 보드를 실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오전에 엄마와 씨름했다고 한다. 결국 아이들에게 엄마가 졌고, 서핑 보드를 차에 실었다. 그 아이들이 윈드서핑을 즐기다 조이를 발견하고 해변으로 데리고 나온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조이를 구하기 위해 아이들을 통해 서핑 보드를 준비시켰던 게 아닐까.
또 나와 조이가 물에 빠지기 10분 전, 근처에서 다른 물놀이 사고가 있었다. 그래서 바닷가에는 이미 구조대와 구급차가 도착해 있었고, 나 역시 누군가의 손에 들려 해변으로 나오자마자 신속하게 응급조치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역시 하나님의 섭리 아니겠는가.
조이는 지금도 가끔 “엄마는 내 생명의 은인이에요”라고 말한다. 나 또한 견디기 힘든 일을 당할 때마다 이날의 절박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새 힘을 얻곤 한다. ‘죽었다가 살아난, 덤으로 사는 인생인데, 무엇이 두렵겠는가’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연약한 인간이기에 그 마음을 끝까지 품지 못하고 결국 거대한 문제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애틀랜타에서 개척한 이민교회가 부흥해 교회 건축을 계획하고 있었다. 처음 200만 달러가 필요하던 차, 한 흑인 목회자가 아이들 아빠에게 접근했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유전 개발에 투자하면 그 수익금으로 교회를 건축할 수 있다고 유혹했다. 그의 감언이설에 속아 남편은 카드 대출까지 받아 전 재산을 투자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기도를 하면서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들 아빠를 말렸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미리 교회 재정 집사님들에게 혹시 투자와 관련, 사인을 요구할 때 절대 사인하지 말라고 얘기해뒀기에 교회 돈은 손 대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그 흑인 목회자란 사람은 나이지리아 국제 사기단의 일원이었다. 목사 명함도 가짜였다. 은행에 있던 생활비마저 국제 사기단에게 몽땅 털리며 1998년 여름, 우리 가족은 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했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