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신의 깜짝 한수] GS 칼텍스배 본선 ● 박정환 7단 ○ 김주호 8단
입력 2010-01-27 17:37
추위가 한풀 꺾이나 싶더니 다시 기승을 부린다. 추위에는 자연히 몸이 움츠러들고 피곤해진다. 그래서인지 몸이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초콜릿이 좋다는 기사가 눈에 확 들어온다. 그 기사를 보자 입에 침이 고이는 것은 무슨 효과인지. 갑자기 스트레스가 밀려오는 것 같은 기분에 핑계 삼아 초콜릿 전문점을 찾았다. 요즘 내 마음을 닮은 ‘악마 같은 핫 초콜릿’을 주문했다. 주문한 ‘그것’이 나오고 한 모금 머금자 ‘아∼ 정신이 바짝 든다!’ 악마의 맛이란 이런 것일까. 또 얼마 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앗! 하고 놀랬던 어떤 수가 떠오른다.
거두절미 하고 그 수를 소개하겠다. 언젠가부터 지는 법을 잊어버린 소년 박정환 7단 (몇 주 전 소개할 때만 해도 5단이었는데 타이틀 획득으로 2단 승단했다)과 늘 꾸준하게 공부하며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김주호 8단의 대국이다.
초반 백의 하변 실리, 흑의 우변 실리로 포석이 펼쳐졌다. 바둑을 잘 두려면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지만 한 수 한 수 무엇 하나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 바둑이다. 포석 역시 한 판의 흐름을 좌우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전도, 흑의 진영을 깨기 위해 저공 침투한 백1,3의 수는 흑의 모양을 깨는 상용 수법중 하나다.
이에 잠시 고민하고는 결심한 듯 돌을 집어 참고도의 흑1에 가져다 놓았다. 딱 보기에 생뚱맞아 보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 두 점을 분리하는 적절한 응징이다. 실전도의 백1로 교환해 놓은 돌을 잡아 그 교환을 확실한 손해로 만드는, 상대방 돌의 효능을 죽이는 날카로운 수다. 멈칫 하며 놀란 백은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아 백4로 손을 돌린다 (이 때 흑a로 받으면 백b로 씌우겠다는 의도). 이에 동요 하지 않고 흑5로 우상 귀 한 점을 제압하는 것이 또한 좋았다. 어쩔 수 없이 백은 8∼10으로 싹싹하게 우상 귀를 포기하고 우변을 쉽게 타개했지만 흑11까지 통통하게 집이 나서는 흑의 우세. 이 후 아직 빈자리는 많이 남아 있어 승부가 끝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유연하게 버릴 것은 버리고 수를 내야할 곳엔 수를 내 흑 승.
고교생 소년 박정환, 최근 들어 타이틀도 획득하고 서서히 기력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는데, 이 흐름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이어져 언제고 흐르며 바둑계에 큰 획을 그어주길 기대해본다.
이영신<프로 4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