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매물’ 넘치는데… M&A시장 개점휴업

입력 2010-01-26 21:31


하이닉스·외환銀·현대건설 등 쟁쟁… 기업들 인수 회피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이 개점휴업 상태다.

하이닉스반도체 등 굵직한 알짜배기 기업들이 매물로 나오고 있지만 정작 인수전에 뛰어든 기업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위험 부담이 큰 신사업 진출이나 외부기업 인수를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대우건설을 인수해 그룹 전체가 무너질 처지에 놓인 금호아시아나 그룹처럼 ‘승자의 독배’를 의식한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M&A시장이 본격 활성화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인수자가 없어 매물 풍년 속에 기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은행권 M&A시장에서 가장 매력적인 대상으로 부각됐던 외환은행마저 연내 매각이 가능할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인수 예상가격이 7조∼8조원으로 급등, 부담이 늘어난 데다 금융감독 당국의 제지로 유력 후보였던 산은지주가 인수전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은지주가 최근 태국 시암시티은행 인수를 추진하는 것도 M&A 대상을 국내 은행에서 해외 은행으로 바꿨음을 시사한다. 외환은행 인수를 강력 추진했던 국민은행 역시 금융감독원의 고강도 검사 이후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면서 M&A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해 들어 이례적으로 기업과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투자설명회까지 열었던 하이닉스반도체에도 파리만 날리고 있다. 29일 인수의향서 제출 마감을 앞두고 있는 하이닉스에는 현재 인수의향서를 낸 곳이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채권단이 LG와 한화 등 대기업 2∼3곳에 지속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해당 기업들은 묵묵부답인 상태다. 채권단은 일부 지분만 인수해도 경영권을 보장하고 인수자금까지 지원하겠다는 당근을 제시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가 경기에 매우 민감한 업종인 만큼 앞으로 1∼2년 뒤에도 좋은 실적을 유지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인수를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상황은 이처럼 열악하지만 매물은 계속 쏟아지고 있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자산관리공사(캠코)와 채권단이 보유한 대우인터내셔널 지분 68%를 매각하기로 하고 다음달 중으로 매각공고를 낼 방침이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을 필두로 쌍용양회, 대우일렉트로니스, 팬택 등의 구조조정 기업들을 털어내야 한다. 정책금융공사는 하이닉스반도체 외에도 현대건설 등 구조조정 기업들의 인수자를 찾고 있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중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산은 관계자는 “살 사람은 없는 상태에서 매물만 쏟아지다 보니 M&A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면서 “매각 일정을 순차적으로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황일송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