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罪와 法
입력 2010-01-26 18:02
법(法)이란 한자는 정자(正字)가 아니었다. 去 위에 전설의 짐승 해치를 뜻하는 글자가 있었다. 나중에 해치가 없어져 法만 남았다.
해치는 기록마다 모습이 다르다. 광화문 앞의 해치 석상과 중국 명(明) 태조 주원장(朱元璋) 능 앞 해치 석상은 영 다르게 생겼다. 얼마 전 서울시가 해치를 시의 상징 동물로 정하기 전까지는 해치 대신 해태라고 불렸다. 해태제과라는 오래 된 기업도 있다.
‘논형(論衡)’이란 중국 책은 해치가 죄 있음을 알아차리는 본성이 있다(性知有罪)고 하였다. 요즘 법관들의 편향 판결이 문제가 되어 있는데 ‘눈 먼 해태’는 공정하지 않은 판결을 야유하는 말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헛갈리는 사안을 재판할 때 판단을 하늘에 맡겼다. 소송 쌍방은 자기의 해치를 데리고 나와 제기(祭器)에 자신의 결백 맹서를 기록해 넣고 신판(神判)을 기다렸다. 신판 결과 패한 자는 신을 속인 것이 되어 제기, 해치와 함께 강물에 던져진다. 법의 정자에서 해치 밑에 있는 去의 윗부분은 패소자, 밑 부분은 뚜껑을 깨트려 없앤 패소자의 제기를 의미한다.
패소자를 커다란 짐승 가죽에 싸서 강물에 던지기도 했다. 춘추(春秋) 시대 말 오(吳)나라 왕 부차(夫差)는 서시(西施)에 홀린 자신을 간하는 충신 오자서(伍子胥)에게 자결을 명령했다. 오자서가 저주의 말을 남기고 죽자 부차는 화가 나 시신을 말가죽 자루에 싸서 강에 버렸다. 이렇듯 법은 원래 죄인에 대한 형벌을 의미했다.
죄(罪)의 고자(古字)는 自 밑에 辛을 썼다. 自는 정면에서 본 코의 형태, 辛은 살갗에 먹물을 들일 때 쓰는 대침이다.
고대에는 먹물을 죄인의 코에 들였다. 죄인 얼굴에 죄명을 입묵(入墨)하는 형벌은 최근 드라마 ‘추노(推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이 글자가 황(皇)과 비슷하다 하여 진시황이 罪로 고쳤다는 설이 있다.
갑골문 발견 전까지 한자 해석의 권위였던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죄를 ‘물고기를 잡으려고 대로 만든 그물’이라고 풀이했다. ‘시경(詩經)’에 ‘죄의 그물’이라는 말이 나온다. 죄 짓고 못 산다는 우리 속담과 같은 맥락이다.
판사의 판(判)은 제사에 희생물로 쓰이는 소(牛)를 칼(刀)로 양분하는 형상이다. 판단하다는 뜻이 여기서 나왔다. 후에 신물(信物)을 양분하여 증거로 삼는 관습이 생기자 반쪽이라는 뜻도 생겼다. 반쪽만 보고 판단하는 판결이 그래서 나오는 모양이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