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경] 세상에 울 일만 있진 않다

입력 2010-01-26 21:55


“이 팀장! 이제 우리 집 다 지었어요. 걱정 많이 했지? 살다 보면 울 일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애. 언제 한번 구경하러 내려오세요.”

대전에서 아동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원장님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대전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좋은 시설이 있었다. 향나무에서 은근한 향이 퍼져 나와 그곳에 있다 보면 금세 마음이 차분해지는, 그런 고즈넉한 분위기의 통나무집이다. 아담하고 아늑해서 아이들도 참 좋아했다.

그런 집이 몇 년 전 어느 날 새벽에 전기누전으로 몇 시간 만에 새까만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나무로 지은 집이라 구조물 자체가 땅으로 내려앉는 바람에 벽면 하나 살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날 원장님은 서류를 챙기겠다고 화염 속에 뛰어 들어 위험을 자초할 뻔 했으나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반세기 동안 이곳을 거쳐 간 많은 아이들의 소중한 생활기록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전화위복이랄까.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자리에는 더 좋은 건물이 튼튼하게 지어져 있다. 이제는 재난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도 완비했다. 후원자도 늘었으며, 아이들은 매주 봉사자들과 함께 산악활동도 시작했다. 덕분에 체력이 좋아져 공부도 더 잘하게 되었다고 한다.

“원장님, 어떻게 그렇게 복구가 빨리 된 거예요?”하고 물었더니 “내가 애들을 데리고 살고 있으니 어쩌겠어.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앓는 소리를 했지요. 그리고 계속 기도했더니, 천사들이 나타나서 도와준 것 같아.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면서 소방서 사람들이 와서 재난 시스템도 설치해주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많이 돌봐줬어요”라고 자랑하듯이 대답하셨다.

대전의 화재가 떠오른 것은 아이티 참사를 보고 난 이후다. 전 세계 사람들은 아이티의 참담한 소식에 슬퍼했고,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아이티로 보냈으며, 그들이 슬픔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손모아 기도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세계 톱스타들의 모금 활동이었다. 보노, 스티비 원더 등 유명 가수들이 무대에서 노래하는 동안 스티븐 스필버그, 브래드 피트, 줄리아 로버츠 등 다른 스타들은 데스크에서 전화통을 붙들었다. 런던과 뉴욕, LA에서 동시에 진행된 이 자선공연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면서 무려 840억원에 달하는 모금실적을 올렸다.

넉넉지 않은 기간임에도 이런 대형 공연이 기획되고 성공리에 치를 수 있는 그들의 시스템과 열정이 부러웠다. 꽉 찬 스케줄 속에 자선무대에 올라 도움을 호소하는 스타들도 존경스러웠고, 그들의 호소에 함께 동참한 많은 사람들도 마냥 고마웠다.

아이티에는 반드시 희망이 찾아올 것이다. 할리우드 스타들을 비롯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슬퍼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 하지 않았나. 이쯤에서 튼튼한 집이 생긴 원장님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 “살다 보면 울 일만 있는 건 아닌가봐.”

이혜경 (한국아동복지협회 기획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