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열풍 속 관객 500만명 돌파 ‘전우치’ 감독 최동훈

입력 2010-01-26 18:02


“한국적 판타지의 세계 고전의 해학미 살렸죠”

‘전우치’는 때를 잘못 타고 태어난 영웅이다. 지난해 한국 영화 중 최단 기간 100만 관객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고 500만 관객을 넘어 순항하고 있지만, ‘아바타’의 기세에 눌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섭섭함이 남긴 해도 ‘아바타’에 맞서 한국 영화의 체면을 지키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전우치’의 감독 최동훈(39)을 26일 서울 논현동 영화사 ‘집’ 사무실에서 만났다.

“500만 명이 손익분기점이었요. 설 연휴 지나서까지 극장에 걸려서 전작(‘타짜’ 684만명 동원)은 넘기길 바라는데…, 초반엔 ‘아바타’에 밀리고 강추위에 폭설까지 왔잖아요. ‘아, 우리의 진짜 적은 강추위구나’ 했다니까요.(웃음)”

얼핏 보면 ‘전우치’는 12세 관람가용 오락영화 같지만, 감독은 영화 곳곳에 인생에 대한 철학과 해학을 흩어놓았다. 영화 중반부 ‘전우치’(강동원)가 ‘인경’(임수정)에게 보여준 바다가 마지막 부분에 등장한다든가, 노파의 예언이 실현되는 부분 등 내러티브 역시 순환적이며 몽환적인 구조를 띤다. “살아봤자 아무 것도 없단다”라는 화담의 대사에서는 인생무상의 메시지도 읽을 수 있다.

-처음엔 오락영화라고만 생각했는데, 다 본 후 ‘뭔가 놓쳤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스토리나 액션만으로 재미를 느껴도 충분하지만, 영화 속에 관객들이 짜 맞춰야 할 퍼즐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기시감, 몽환성 등 고전이 가진 상상의 세계를 관객이 읽어주길 바랐어요. 그래서 ‘두 번 보니 더 재밌다’는 얘기를 들을 때 제일 반가워요.(웃음)”

-하고 싶었던 얘기가 많았던 것 같은데 하나로 관통할 수 있는 주제가 있나요.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건 적당치 않아요. 영화는 관객 각자의 몫이니까. 제가 하나 정도 얘기하자면, 전 ‘화담’을 악당이 아닌 루저라고 생각했어요. 피리를 쫓지만 ‘설사 피리를 찾았다고 한들 그가 행복할까’라는 뉘앙스를 깔고 싶었죠.”

-제작비 규모도 크고, 액션신도 많고 영화 만들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뭐였나요.

“어떤 스펙터클을 보여줄 지에 관해서였어요. 거창하기 보다는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스펙터클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클라이맥스에 신선이 벽에 끼어 꼼짝 못하는 장면이나, 자동차 액션신에서 ‘전우치’가 차에 올라타지 못한 채 도로를 뛰어다니는 장면 같은 거요. 고전의 해학미를 살리고 싶었죠. 스토리 부분에서는 어떻게 이야기를 구축해야 관객을 빨리 몰입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고요.”

-와이어 액션이 많아 안전 문제도 걱정이었을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었죠. 실제 유해진씨는 전치 4주 부상을 입었어요. 저는 현장에서 하도 소리를 질러 나중에는 득음했다고 할 정도였죠.(웃음)”

-다른 고전으로도 영화를 만들 생각이 있나요?

“‘전우치’를 통해서 우리 고전에도 이런 상상의 세계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고, 앞으로도 한국적 판타지의 세계를 더 찾아가고 싶어요. ‘전우치’를 또 찍어도 좋겠고요.”

-사실 이번 작품은 ‘타짜’, ‘범죄의 재구성’ 등 전작과 달리 악평도 많았어요.

“‘산만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전 동의하지 않아요. 중요한 정보를 너무 아무렇지 않게 던져놓았다는 생각은 들지만요. 전작들의 드라마가 너무 타이트하니까, 이번엔 드라마 사이의 간극을 벌리고, 여운을 주고 싶었어요. 인물의 처지를 드러내는 장면이나 농담 이런 부분을 통해서 캐릭터를 더 강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전우치’는 제게 분수령이 된 작품이에요.”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비극으로 끝나는 영화를 보면 “이렇게 행동했더라면 파국을 맞지 않았을 텐데…”라는 안타까움에 잠 못 들 때도 많았다. 어릴 때부터 갈등에 민감했으니 결국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하며 살게 될 거라는 걸 본인은 일찌감치 알았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부모님은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을 해라”고 말씀하셨다. 대학 때는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 엑스트라로 출연하고 받은 돈 8만원으로 트렌치 코트를 사서 줄창 입고 다녔다. 속칭 ‘바바리’를 입고 다니면 학교 앞을 지키던 전경들도 ‘날라리’로 보고 검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일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처음 생각한 건 시나리오 작가였지만 임상수라는 좋은 감독에게 일을 배우며 감독이 하고 싶어졌다. 그가 감독으로 데뷔했을 때 영화광인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더니, 이렇게 되려고 그랬나보다”라며 뛸 듯이 기뻐하셨다.

흥행감독이라는 타이틀이 매우 고맙지만, 아주 기쁘지만은 않은 최동훈은 이렇게 감독이 됐고, 아직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의 영역을 하고 싶은 방식으로 넓혀가고 있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