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뉴스는 지금 수술중… 日 NHK 벤치마킹 심층 보도로 간다
입력 2010-01-26 18:14
KBS가 수십 년째 고착화 된 한국 뉴스 형식에 일대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김인규(60) 신임사장의 야심찬 계획이다. 공채 1기로 입사해 35년만에 사장에 오른 김 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TV 뉴스가 심층성 전문성 정보성이 부족해 외면받고 있다”며 뉴스의 대대적인 개편을 예고했다. 보도국 기자로 잔뼈가 굵은 그가 천명한 뉴스 수술 계획은 현재 20개 이상의 뉴스 꼭지를 8개 정도로 줄여 심층성과 전문성을 보강하는 한편 기자의 얼굴은 화면에서 찾아볼 수 없는 NHK 방식을 채택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KBS 보도국에 비상이 걸린 것은 물론이다. 지난해 12월 22일 꾸려진 ‘KBS 뉴스 개편 TF팀’은 20여 명의 기자가 투입돼 개편 방안을 정밀하게 다듬고 있는 상태다. TF팀을 총괄하는 최창근 보도부국장은 “2월말이나 3월 초쯤 TF팀의 활동은 끝날 것이고, 상반기 프로그램 개편이 이뤄지는 5∼6월에 맞춰 뉴스 개편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9시 뉴스를 필두로 모든 일일 뉴스가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밝혀 광범위한 변화를 예고했다.
◇NHK뉴스는 어떤 모습?=김인규 사장이 롤모델로 제시한 NHK 뉴스는 기자의 현장성보다 앵커의 해설에 중점을 두는 방식이다. 매일 오후 7시에 방영되는 간판 뉴스인 ‘NHK 뉴스 7’은 분위기와 형식면에서 한국 뉴스와 확연히 다르다. 메인 저녁 뉴스의 분량은 총 30분에 4∼5꼭지를 다룬다. 50분 보도에 25∼26 꼭지를 다룬 한국 뉴스와 달리 1꼭지에 할애하는 시간이 길다.
특이한 점은 기자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튜디오의 앵커는 뉴스 대본을 읽고 관련 영상이 흐른다. 김인규 사장은 이와 관련 “시청자들은 기자의 얼굴이 아니라 정보를 얻으려고 뉴스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앵커만 나와도 된다. 지금은 뉴스에 사투리 쓰거나 발음이 부정확한 기자 등이 다 나와서 리포팅하고 있는데 앵커가 차분하게 진행하는 스타일로 가는 것”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같은 개편 방향에 대해 보도국 내에서는 “자칫 현장을 전달하는 생생한 기자의 목소리가 빠져 생동감 없는 뉴스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롤모델인 NHK의 경우 장면 전환이 매우 느리다는 특징이 있다. 1분 20초 안에 리포팅을 마치는 한국 뉴스에서는 여러 장면이 압축적으로 들어간다. 때문에 인터뷰 대상의 멘트는 축약해서 들어간다. 하지만 NHK 뉴스는 인터뷰 대상의 의견을 길게 들려주며, 여러 취재원의 목소리를 담는다. 예를 들어 지난해 4월 24일 ‘NHK 뉴스 7’는 인기가수 쿠사나기 츠요시의 알몸 파문 사건을보도하면서 현장 인근의 가게 점원, 국회의원, 소속사, 기자회견장 등 취재원 4명 이상의 인터뷰를 실었다. 약 10분 가량 ‘초난강 알몸 파문’을 놓고 폭넓은 취재를 시도한 것이다.
◇리포팅 시간 연장이 심층성 확보할까?=이를 종합해서 볼 때 김인규 사장이 밝힌 NHK식 뉴스 개편은 리포팅 시간 연장을 통한 심층성 확보, 앵커 중심의 전달을 통한 감정적 보도 자제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심도 있는 뉴스보도에 대한 시청자들의 요구는 높은 게 사실이다. 2004년 방송영상산업진흥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KBS는 심층보도의 비율이 NHK와 BBC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SBS도 현재 ‘뉴스제작방식 개선 TF팀’을 운영할 정도로 각 방송사는 방송 뉴스의 심층성을 높이는 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NHK 뉴스가 심층보도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3년째 NHK뉴스 시청해온 진혜영(27·여)씨는 “한국 뉴스에 비해 그다지 심층적이라는 느낌은 없다. 오히려 사실을 길게 나열해 지루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NHK 뉴스가 전반적으로 지루하고 단조롭다는 느낌을 주는 이유는 중계보도 위주이기 때문이다. 심층 보도처럼 원인을 파고들고 반론을 카메라에 담기보다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두루두루 들려주는 기계적인 중립성을 취하는 것이다. 윤호준 한국콘텐츠진흥원 박사는 “NHK보도 형태는 길이만 길 뿐이다. 벌어지는 일에 최대한 개입을 안 하는 중계자의 태도를 견지한다”면서 “형식면에서 NHK를 따라하는 것은 문제가 안되겠지만, 보도태도나 내용을 지향한다면 심층보도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NHK에서 앵커는 뉴스에 대한 질문과 논평을 하지 않고 대본만 읽는 ‘내레이터’의 역할에 그쳐 비판적 시각을 더욱 축소하는 역할을 한다. 윤호준 박사는 “오히려 내용적인 측면에서 BBC보도가 앵커 3∼4사람이 현안에 대해 대화하고 질문하는 식으로 여러 의견을 펼쳐놓는 장치를 마련하고, 내용에서도 정부의 결정인 이라크전에 대해 강경한 반대 입장에서 보도할 만큼 심층보도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취재 독립성 보장 장치 마련될까=결국 이번 KBS의 뉴스 개편은 심층보도의 내용을 확보할 제도적인 장치의 마련 여부가 관건이다. 방송기자가 촬영, 편집, 기사 작성까지 취재에 깊이 관여하는 현재의 시스템이 앵커 중심의 뉴스 개편 이후에도 유지될 지는 미지수다. 우려되는 ‘기자소외 현상’에 대해 전국언론노조 이우환 사무처장은 “NHK식 뉴스 시스템에서는 기자가 취재를 하더라도 편집실에서 어떠한 식으로 필터링 되어 방송이 되는지를 전적으로 방송국 역량에 의해 결정된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