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대에 걸쳐 한 집 외양간 지킨 소 이야기 ‘워낭’ 소설가 이순원
입력 2010-01-25 19:07
“소의 눈에 비친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소설가 이순원(52)이 강원도 시골 마을 외양간을 지켜온 소의 12대에 걸친 이야기를 다룬 장편 ‘워낭’(실천문학사)을 펴냈다.
갑신정변이 일어난 1884년부터 광화문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열렸던 2008년까지 120년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들의 사연은 집주인 4대의 이야기와 버무려지면서 소와 인간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25일 서울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만난 작가는 “지난해 초 독립영화 ‘워낭소리’를 보고 동생과 얘기를 나누다가 어릴 때 고향 강릉 시골집에서 키우던 소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다”며 “그 얘기를 한번 써봐야겠다고 한 게 이번 작품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강원도 우추리 차무집 소의 내력은 그릿소부터 시작된다. 갑신정변이 일어난 그 무렵 노름빚에 팔려 어미와 생이별한 송아지 그릿소가 차무집으로 들어온다. 그릿소는 소가 없는 가난한 집이 남의 집에서 빌려다 키우는 소를 일컫는다. 그릿소는 2년 뒤 흰별소를 낳고 주인에게 돌아가고, 차무집 외양간의 주인이 된 흰별소는 미륵소를 낳고 미륵소는 버들소를 낳는다. 뒤를 이어 화둥불소, 흥걸소, 외뿔소, 콩죽소, 무명소, 검은눈소, 우라리소, 반제기소가 차례로 차무집 외양간을 지킨다. 이 과정에서 차무집과 마을 사람들도 일제 식민지시대와 6·25전쟁 등 근현대사의 풍파를 헤쳐 나간다.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우추리는 작가의 고향이고, 차무집은 동네 사람들이 작가의 고향 집을 부르던 ‘참의집’이란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검은눈소, 우라리소는 어린시절 작가가 키웠던 소들이다. 몸이 불편한 소몰이꾼으로 나온 ‘세일’ 삼촌도 작가의 당숙이 모델이라고 작가는 밝혔다.
작가는 “소는 농경사회에서 사람들과 농사를 함께 지어온 끈끈한 관계였지만 경운기가 소의 쟁기질을 대체하면서 소와 인간의 협업관계는 사라졌다”며 “인간은 이제 논밭이 아니라 식탁에서 젖과 고기로 소를 만나는 관계가 됐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 소설이 농경시대로 되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가는 소설을 쓰던 지난해 여름과 가을 매주 주말에는 강원도로 내려가 대관령과 경포대, 정동진을 잇는 150㎞에 이르는 강원도 옛길(바우길) 탐사에 나섰다고 한다.
작가는 “바우길을 걸으면서 이 땅에 왔다간 소들의 짧은 생애와 그들의 큰 눈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했다”면서 “그러다보니 120년간 한 집의 외양간을 대대로 지켜온 어떤 소의 가문 얘기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