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경영진과 유착 고리 끊는다… 은행연합회 ‘사외이사 모범규준’ 마련

입력 2010-01-25 18:33


금융지주사와 은행의 사외이사들은 앞으로 기본 보수 외에 성과급과 각종 기부금을 받지 못한다. 또 사외이사 중 20%는 매년 교체되며 임기도 최장 5년을 넘을 수 없게 된다.

◇경영진·사외이사 결탁 통로 없앤다=은행연합회는 25일 이 같은 내용의 ‘은행 등 사외이사 모범규준’을 확정, 사외이사와 은행 경영진 간의 결탁 가능성을 차단하기로 했다. 이 모범 규준은 기타 공공기관인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농협, 수협, 산은지주회사 등 5곳을 제외한 모든 은행과 금융지주사에 적용된다.

모범규준은 은행 경영진이 사외이사와 야합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끊는 데 초점을 맞췄다. 유착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사외이사의 20%를 매년 교체하고 사외이사의 총 보수도 크게 줄였다. 지금까지 금융지주사들은 사외이사들에게 기본보수 외에 연 4800만∼6000만원 상당의 스톡옵션 등을 통해 성과금을 별도로 지급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기본 보수 외에 성과금을 추가로 제공할 수 없고, 구체적인 보수 내역도 공시를 통해 공개해야 된다. 사외이사(배우자, 직계혈족 포함) 소속 대학이나 비영리법인에 대한 기부내역도 의무적으로 이사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임기는 2년까지 보장하지만 연임할 경우 임기는 1년간씩 연장하며 최장 5년을 넘지 못하게 했다.

대신 사외이사들의 전문성과 독립성은 강화된다. 원칙적으로 은행(지주회사) 이사회 의장은 사외이사 중 선임하도록 했고, 이사회를 구성하는 사외이사 비율도 종전 2분의 1 이상에서 과반수로 강화됐다.

사외이사 추천위원회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 구성원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채워야 하며, 자신을 추천한 위원은 의결권이 제한된다. 사외이사 후보 추천내역과 관련해서는 최대주주와의 관계, 추천인뿐 아니라 후보제안자, 추천이유, 회사와의 관계 등도 추가로 밝혀야 한다.

◇은행 지배구조 바뀔까=모범규준이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부터 적용되면 은행뿐 아니라 금융권 전체 지배 구조에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표면적으로는 은행연합회 이사회가 사외이사제도 모범규준을 제정했으나 실질적으로는 금융감독 당국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돼 증권업계와 카드업계 등 전체 금융권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은행권에서는 오는 3월 주총에서 6명 중 1명꼴인 10여명의 사외이사가 대거 물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KB금융지주의 경우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조담 전남대 교수와 자크 켐프, 변보경 이사 등 3∼4명이 교체될 전망이다. KB금융 사외이사들은 27일 이사회를 열고 거취를 논의할 전망이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등 이사회 의장직을 겸임하고 있는 회장들의 의장직 사퇴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금융감독 당국이 사외이사 제도 개선을 통해 궁극적으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인 만큼 겸직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외이사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경영진과 이사회 의장을 분리한 점에는 후한 평가를 주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모범 규준이 업계의 자율보다는 금융감독 당국의 의중이 강하게 투영됐다는 점에서 관치금융의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번 모범 규준은 자율적 판단이라기보다 당국의 의사가 반영된 반강제적인 조항”이라면서 “시행 과정에서 현실과 맞지 않아 의도하지 않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황일송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