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글 퍼나르기만 해도 처벌”… 경찰, 고위직 병역면제 유언비어 유포한 네티즌 입건

입력 2010-01-25 21:34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25일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군복무를 마쳤는데도 면제받았다는 허위 사실을 인터넷에 퍼뜨렸다”며 네티즌을 고소한 사건과 관련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박모(30)씨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하지만 경찰의 조치에 대해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기 어렵고 실시간 갑론을박이 자유롭게 벌어지는 인터넷 속성을 반영한 구체적인 처벌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해 7월 2일 ‘이 수석 등을 포함한 이명박 정부 인사들은 군대에 안 간 사람만 있고 전 정부 인사는 병역을 이행한 사람만 있다’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올렸다.

박씨 글은 한동안 반응이 없었지만 정운찬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의 병역 문제와 경찰의 병역비리 수사와 맞물려 그해 9월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인터넷 칼럼니스트인 또 다른 박모(37)씨는 인터넷에 떠도는 현 정부 병역 면제자를 표로 정리한 그림 파일을 그해 9월 20일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후 허위 명단에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추가됐고 나모(26)씨 등을 통해 명단이 삽시간에 확산됐다. 현직 교수인 홍모(44)씨는 인터넷에 퍼진 명단 일부를 자신의 칼럼에 포함시켜 모 인터넷 언론에 기고했다. 이들은 재판 결과에 따라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36명의 네티즌을 적발했지만 고소인인 안 장관과 이 수석의 의견 등을 감안해 5명만 입건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실에 부합하는 글을 퍼 나르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허위 글을 인터넷 사이트 등에 퍼뜨린 것만으로도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고위 공직자의 병역 이행 여부는 병무청 홈페이지에서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데도 확인하지 않고 글을 확산시킨 책임을 물어 입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신평 경북대 법대 교수는 “허위 글을 퍼 나른 책임을 물어 처벌하는 것이 대법원 판례를 벗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자칫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소지가 있다”며 “수사기관이 일일이 형사처벌 대상을 가리기보다 장기적으로 당사자 간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을 적용하는 게 적합하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의 김보라미 변호사는 “네티즌을 언론인에 버금간다고 보고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서 여성 시위자가 경찰에 의해 숨졌다는 허위 글을 사진과 함께 인터넷에 올린 혐의로 기소된 이모(48)씨는 지난해 2월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당시 사망설 진위가 객관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만큼 이씨 게시물을 허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