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고쿠산카(國産化)

입력 2010-01-25 18:01


1991년 걸프전시 일본 자위대는 걸프에 없었다. 그러나 일본의 존재감은 뚜렷했다. 이라크군을 강타한 미군 첨단 무기의 중요 부품은 일본 방위산업체가 생산한 것들이었다. 당시 사용된 정밀유도폭탄 부품 가운데 80% 정도가 도시바와 미쓰비시 등 일본 200개사 제품이었다. 방공미사일 패트리엇이나 전파방해 장비에 사용된 반도체 20%가 일본제였다.

일본 무기 기술의 우수성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일본에 무기 기술을 이전해 줬던 미국이 차세대 전투기인 F-2 공동 생산을 일본에 제의할 정도다. 일본은 기술 국산화에 대한 집착이 강한 나라다. 일본 전문가 리처드 J 사무엘스는 저서 ‘일본이 힘 있는 나라가 된 이유’에서 일본이 강대국이 된 요인은 ‘고쿠산카(국산화)’에 있다고 강조했다. 어떤 기술이든 독자적인 개발이 가능하지 않은 한 의미가 없다는 ‘기술민족주의’에 기반을 뒀다는 설명이다.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 말 서구 기술을 도입해 근대 무기 기술 개발을 본격화했다. 시작할 때부터 철저히 국산화에 기반을 뒀다. 비용이 더 들어도 국산 부품을 사용하는 곳에는 보조금을 줬다. 반면 수입부품 사용은 제한했다. 조선업의 경우 1896년부터는 수입부품 사용을 금지했다. 1885년 일본 육군은 수입총을 밀어내고 국산 연발총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1875년에는 최초의 일본산 군함을 진수했다. 2차 세계대전시 일본은 세계 최대 전함 야마토를 건조했다.

전후 일본은 미국의 철저한 비군사화 정책으로 군수산업이 대부분 해체됐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재기의 기회를 줬다. 무기 기술은 철저하게 국산화한다는 원칙은 고스란히 이어졌다. 손상된 미군 전차나 항공기 수리로 시작된 일본의 무기 기술은 40년 만에 첨단 무기류 대부분을 자체 생산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1953년도 일본산 군수품 비중은 34%. 그러나 1983년 이후 비중은 90%선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전에서 무기 기술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앞선 기술을 가진 나라는 첨단 무기체계를 기반으로 단단한 군사력을 구축할 수 있다. 우세한 무기체계는 다양한 군사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자체 무기 기술을 갖춘 나라는 유사시 외부 공급이 제한될 상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무기 기술 수출에 따른 수입도 적지 않다.

하지만 무기 기술 개발은 적잖은 부담이 따른다. 우선 투자비용이 많이 든다. 기술 개발이 꼭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기술력이 낮은 상태에서 자체 개발을 시도한 뒤 완료될 즈음 이보다 더 앞선 기술이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는 기술 확보보다 경제성을 감안해 국외 구입을 선호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 무기체계의 국외 구매 수준은 26% 정도다. 많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 기술로 만든 무기류 수출도 괄목할 만큼 늘고 있다. 하지만 핵심 전력을 구성하는 첨단 무기체계의 주요 부분은 여전히 국내 개발 능력이 못 미친다. 특히 항공 부문은 국산화율이 58% 정도에 불과하다.

지난주 정부는 우리 기술로 전투기와 헬기를 만드는 것을 포함한 항공산업발전 기본계획을 선보였다. 헬기의 경우 중복 투자라는 부정적 의견이 있지만 독자 기술 개발에 비중을 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무기 기술 국산화는 경제성만 고려한다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반면 제대로만 된다면 경제 전반에 미치는 효과는 크다. 국가 기술의 종합적인 성장을 고려하면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무기 기술 국산화는 시도할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최근 첨단 무기류 생산은 여러 국가가 공동 참여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만이 제공할 수 있는 독자적인 기술이 없다면 국제 공조에서 밀려날 가능성도 크다. 일본만큼은 아니어도 국산화된 기술을 어느 정도 갖춰야 할 필요는 있다.

최현수 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