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문일] 5차 사법파동과 사법개혁 방향
입력 2010-01-25 17:58
지금 사법부에서 벌어진 일들은 한데 묶어 5차 사법파동으로 불러야 한다. 과거 4차례 사법파동이 정치권력과 법원 수뇌부에 대항한 것이라면 이번은 법원이 국가와 사회에 대항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 판사들에게 촛불시위 재판을 미루지 말라고 촉구한 법원장을 판사들이 뒤늦게 문제 삼은 신영철 사건을 우리법연구회의 대부 박시환 대법관은 5차 사법파동이라고 고무했으나 공인받지 못했다. 편향된 판결이 거듭되는 법원의 현실이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때 신영철 이메일 폭로와 강기갑, PD수첩 무죄 판결은 동전의 양면이다. 사법파동이란 말이 법관들의 전용어일 수 없게 되었다. 국민 눈에 최근 일련의 판결은 파동을 넘어 쓰나미급 충격이다.
이번 파동의 본질 중 하나는 법관의 정치적 성향이 재판에 반영되었음을 의심하기에 충분한 판결이 거듭된 점이다. 이동연 판사의 강기갑 재판은 미리 정한 무죄 결론에 해괴한 논리를 꿰어 맞춘 혐의가 역력하다. 문성관 판사는 법관의 자유심증주의를 남용해 MBC가 잘못을 인정한 내용까지 부정하는 독단을 부렸다. 두 판사의 정치성은 과거 판결에서도 드러났다. 이 판사는 검문 순경을 차량으로 들이받은 민노총 조합원의 영장을 기각했다. 문 판사는 방북 조건을 어기고 북한 행사에 참가한 통일운동가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국회에서 농성한 민노당 당직자들을 공소기각하고, 민노당 정치인 후원행사에 참석해 후원금을 낸 마은혁 판사처럼 이들도 자신의 신념을 따랐을 것이다.
법관은 정치적으로 진공 상태에 있지 않다. 보통의 사람과 똑같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치적 동물에 속한다. 우리 헌법도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할 뿐 정치적 중립 의무는 규정하지 않았다. 법관도 투표를 통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남을 심판하는 기능 때문에 법관들은 정치적으로도 공정해야 하고 또 공정할 거라고 막연한 기대를 받았다. 이번 사법 파동은 그런 거품을 깨트렸다는 의미도 있다. 재판이야말로 때로는 철저하게 정치적 행위임을 알게 해 주었다.
문제는 앞으로도 정치적 편향 판결이 속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 법원은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사법연수원 성적이 우수한 사람들 중에서 법관을 충원하는 시스템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과는 달리 법관 후보의 정치 성향은 임용 고려 사항이 되지 않는다. 법원이 문제 판결을 막기 위해 형사단독 재판을 경력 10년 이상 판사에게 맡긴다는 방안은 눈속임이다. 최근의 문제 판결은 경력 10년째거나 그 이상인 판사들의 작품이다. 그보다 젊은 판사들이 경력 10년 요건을 채우기까지는 잠깐이다. 이런 현실에서 법관이 재판에서 자신의 정치 성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여 재판의 공정성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법개혁의 핵심은 법관 선발과 양성에 있다. 우리 사법 체계는 일본이 근대화 과정에서 받아들인 프랑스와 독일의 사법체계를 일제 강점기를 통해 이식받은 것이다. 그 틀 안에서 로스쿨 같은 미국식 사법제도를 절충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미국의 법관은 변호사 자격을 갖고 실무 경험이 있는 사람 가운데서 임용하는 법조일원 시스템이다.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미국 모델이 일본 모델을 대체하고 있지만 사법체계는 그렇지 못했다. 사법부 내에서 법조일원화 논의는 듣기 힘들다. 법관들이 판결은 진보적으로 하더라도 밥그릇 문제에는 보수적이 되는 것이다.
일본이 만든 틀에 안주할 게 아니라 이참에 법조일원화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사법시험을 변호사자격시험으로 바꾸고 법관선발위원회에서 변호사들의 활동, 공판 성적, 평판 등을 종합해 법관 후보 명단을 관리하면서 수시로 임용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우리 사회도 공직분야에서는 연고주의가 많이 극복되었다. 정실 임용은 쉽지 않다. 지역과 사회에 대해 강한 책임의식과 봉사정신이 있고 공판에 성실하게 임하는 변호사가 법관이 되어 법의 저울을 다룰 때 철 지난 이념에 사로잡힌 법관들의 자리는 좁아진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