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변재운] 은하수공원
입력 2010-01-25 17:58
SK그룹 고(故) 최종현 회장이 장묘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헬기를 자주 탔기 때문이라고 한다. 1980년 유공을 인수한 이후 울산 정유공장 방문에 헬기를 많이 이용했는데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좁은 땅덩어리에 웬 묘지가 그렇게 많은지 절감하게 됐다는 것이다.
SK 관계자는 “당시 최 회장은 헬기에서 내리면 사업보다는 묘지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고 전했다.
2005년 50%를 돌파한 우리나라 화장률이 빠르게 높아져 올해 70%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여기에 최 회장의 공이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1998년 폐암으로 숨진 최 회장은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는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장묘문화를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꾸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해 20%대에 머물던 화장률이 이듬해 30%를 훌쩍 넘어섰으니 유명인사의 솔선수범이 사회를 바꾸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SK그룹이 최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세종시에 건설한 SK장례문화센터가 지난 12일 개관했다. 총 500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된 SK장례문화센터는 장례식장과 화장장, 봉안당을 두루 갖춘 종합장례시설로 이 안에서 고인에 대한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SK로부터 이를 기부 받은 세종시는 이곳에 수목장 잔디장 화초장 등 자연장 부지와 공원시설을 갖추고 이 일대를 은하수공원이라 명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고 했지만 은하수공원은 그야말로 산 자와 죽은 자,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공간이다.
우리 국민이 과거 매장을 선호한 것은 유교사상의 영향이다. 즉 조상을 잘 모셔야 후대가 복을 받는다는 인식 때문이다. 시신을 불태운다는 것은 불경이었다. 그런 탓에 2007년 기준 부산(79.9%)과 인천(73.6%), 서울(70.2%) 등 대도시 화장률은 70%를 넘는 데 비해 전남 보성(13.9%), 전북 순창(17.3%), 충남 청양(22.4%) 등 전통 유교사상이 강한 농촌지역은 아직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
농촌지역에 화장시설이 충분치 못한 것도 매장을 부추기는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화장률 99%인 일본은 화장장이 2000여개인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48개에 불과하다.
게다가 화장시설이 열악한 것도 화장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은하수공원에 가보면 그곳에서 잠들고 싶어진다. 화장시설에 돈 좀 들이자.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