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해외입양 봇물… 불법 인신매매 우려도
입력 2010-01-24 18:34
미국의 로스 하스켈씨 부부는 아이티에서 입양한 남자아이 알렉산더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봤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알렉산더는 젖병을 입에 문 채 밝게 웃고 있었다. 미국의 CNN방송은 23일(현지시간) 아이티 고아 알렉산더가 새로운 가족과 함께 행복을 찾았다고 전했다.
아이티 고아들을 위해 선진국들이 입양 추진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입양 대상은 강진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은 물론 지진 발생 이전의 고아들도 포함됐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에 따르면 지진 발생 전 아이티에는 38만명의 고아가 등록돼 있고, 이번 지진으로 수만명의 고아가 추가 발생했다.
캐나다 이민국 직원들은 직접 이민 지원을 도울 수 있도록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로 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았다. 캐나다 이민부 제이슨 케니 장관은 “아이티 어린이들이 캐나다에 신속히 입국할 수 있도록 임시 거주 허가증을 발행토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미국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직접 가족을 잃은 아이티 어린이들의 미국 내 입양 절차를 신속히 진행토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미 마이애미주 가톨릭 교회는 무연고 아이티 어린이들을 남 플로리다로 집단 이송해 임시보호시설에 수용한 뒤 양부모를 찾아주거나 원래 가족과 재회하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인 ‘피에르 팬 작전’을 준비 중이다.
프랑스도 아이티 어린이 276명을 서둘러 입국시킬 계획이다. 그 중 33명이 22일 프랑스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네덜란드도 같은 날 자국 내 가정에 입양될 어린이 106명이 들어왔다. 벨기에와 독일, 스페인도 아이티 어린이들을 신속히 입양할 절차를 밟고 있다. 이탈리아는 아이티 고아 입양을 문의하는 전화가 잇따르자 관계 당국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이런 현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세계 각국이 아이티 고아들의 입양에 신속히 나서는 건 좋지만 잘못된 상황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부 아이티 어린이들이 적법 절차 없이 해외로 보내지면서 불법 아동 매매가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얘기다. AFP통신 등 외신은 “가족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병원에서 아이가 사라진 사례를 약 15건 보고 받았다”면서 “5년 전 동남아 쓰나미 참사 당시 국제 인신매매 조직들이 아이들을 유괴해 해외로 빼돌린 상황과 유사하다”고 유니세프 장 뤽 르그랑 고문의 말을 인용해 22일 보도했다.
실제로 네덜란드에 도착한 아이티 고아 중 40명은 신원 확인 서류조차 없는 상태였다. 유니세프는 공항에 직원을 파견해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들의 신원 확인 서류를 점검하기로 했다.
국제단체들은 또 인명 구조작업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입양이 이뤄지면 아이들이 가족이나 친척과 재회할 가능성을 잃게 되는 상황이 발생해 고통을 겪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